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나쁘다' 하게 살아라!

기사승인 21-01-07 15:01

공유
default_news_ad1

 
양동현 교수
 
필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니던 그 시절에 아침과 저녁밥은 할아버지와 함께 둘이서만 작은 소반에서 겸상을 하면서 약간의 쌀이 섞인 희고 검은 선이 뚜렷한 혼식 밥을 먹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5남매의 형제자매인 일곱 식구들은 둥그런 두리반에서 어제저녁에 삶아서 밤새 불려 마루의 기둥에 걸어 놓았던 거무스레한 백 프로 보리밥을 드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커다란 무쇠솥에 불려놓은 보리를 넣고 동네우물에서 길러 온 물을 부으신 후에 한쪽 편에 흰쌀을 따로 모아서 놓은 상태로 허청에 있는 갈퀴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지으셔서 할아버지와 제 밥은 따로 담으신 후에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의 밥을 푸셨습니다. 제가 종손이라서 할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었는지, 집에 작은 소반 하나와 두리반이 하나밖에 없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제 밥그릇에 담겨 있는 밥을 다 먹고는 더 먹고 싶어서 어머니께 더 달라고 하려고 머뭇머뭇하고 있으면, 할아버지께서는 '나쁘다 하게 먹어라 그래야 좋은 것이야' 하고 말씀하시면서 할아버지 밥그릇의 남은 밥을 떠서 내 밥그릇에 넘겨주셨습니다. 저는 그때의 할아버지 말씀이 밥을 너무 배부르게 먹는 것보다 적당히 먹는 것이 나중까지 생각해 보면 건강에 더 좋다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할아버지의 '나쁘다'라는 말씀이 여러 가지 의미로 늘 생각났습니다. 살아가면서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들을 다 가지지 못할 때 사람들은 부족하여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 이때가 밥 먹을 때 배부르게 먹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열만큼의 크기로 가지고 있거나 준비를 하였다고 생각할 때, 일곱이나 여덟만큼만 채워지면 나머지 두셋이 채워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길게 보면 그것이 더 건강하게 삶을 사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요즈음 코로나로 일도 못하고,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아지니 기존에 일상이라고 여겼던 삶의 패턴이라는 것이 무너져서 주로 집에서 어색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철학자이신 김형석 선생님을 비롯한 인생의 선배들께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하는 60대'의 인생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늘 조금씩 부족한 상태에서 조금씩의 아쉬움을 남기며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인생인가 보다 하고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 

술 마시지 말라고 항상 전화로 당부하는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예전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즉각 대답을 했는데, 요즈음은 술이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는 아내의 걱정스러운 한숨과  잔소리를 좀 더 듣고 전화를 끊습니다. 대부분은 잘 살아온 것 같은데, 뭔가 조금은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조금은 부족하고 아쉬운 '나쁘다'하는 삶이 잘 사는 것이겠지요?!

양동현 전 대한민국산업현장(HRD) 교수

<저작권자 경제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코로나바이러스19에 대한 생각
 FACT FULNESS(사실충실성)을 읽고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관대한 사회와 엄격한 사회
 기업의 재무제표와 경영분석(1)
 무슨 생각으로 살아야 하나?
 내가 행복하면서, 더불어 선하게 살기 위해서는?
 기업의 재무제표와 경영분석(2)

default_news_ad3
default_setImage2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