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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뉴월드'의 아기공장을 두려워하며

기사승인 24-05-2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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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시인
 
인구절벽! 미국의 경제학자 해리 덴트(Harry Dent)가 역삼각형 분포도의 급격한 인구감소를 표현하기 위해 차용한 이 말은 어떤 나라가 나라다운 지위와 규모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인구감소 현상에 직면해 있음을 경고해주는 언어다.

즉 뛰어넘을 수 없을 만큼 가파른 지형적 이미지가 말해주듯, 이 말은 막힘과 암담함과 해결불능이란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미래를 떠올리게 해준다. 우리나라의 인구절벽화 현상은 1980년대 후반부터 감지되기 시작한 이래, 2021년 4월 14일 유엔인구기금(UNFPA)이 '2021년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를 통해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당 평생 동안의 예상 출산율)을 2년 연속 198개 조사대상국들 중 취하위라고 발표한 것과 2019년에 0.85명이었던 출산합계율이 2023년에 0.65명으로 감소한 것이 말해주듯, 인구절벽의 위험수치가 점점 더 높아가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와 사회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40여 년 동안 위기의식을 점진적으로 고취시키며,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의 원인분석도 하고, 정책적 과제도 제시해왔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과 인력과 행정력을 투입하고도 꼴찌의 불명예만 쌓아가고 있다. 왜? 정부가 꾸준히 발표해온 문제분석과 해결책이 부실해서일까? 탁상형의 비현실성 때문일까? 아니다, 그만하면 인구절벽의 원인도 밝힐 만큼 다 밝혔고, 해결책도 투명화했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실천력이다. 대상은 국민이다. 육아와 보육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국민, 출산과 양육에 대해 변화된 사회적 인식을 가지 국민, 그리고 경제적 인센티브와 복지 혜택의 빈곤을 느끼는 국민이다. 그 국민은 출산과 양육을 가족적·사회적 의무와 책무로 인식한 부모 세대와 달리, 이 같은 책무와 의무를 선택사항으로 인식한 국민이며, 자신의 행복과 자유를 더 중요시하는 국민이다.

따라서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부모가 자신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헌신한 만큼 자신은 희생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국민이 정부의 위기의식 고취에 동조하며, 해결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합의는 필수다. 정치적·윤리적 정의와 품격을 갖춘 정부가 겸손하고 신중한 토론을 통해 여당과 야당과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뭐든 검색하고, 접속할 수 있는 국민들은 불의를 은폐하거나 정책적 혼조를 이어가는 정부에게 신뢰를 주지 않는다.

이런 경우, 신뢰를 잃은 정부의 정책은 여론만 악화시킨 채 폐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치지형이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보이는 곳에서는 정책을 제시하거나 의결하기에 앞서 상대방과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노력부터 선행해야 한다. 상대방을 대화 상대로 만들고, 상대방의 손을 잡고 국민 앞에 나서야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절차가 인내력 있게 수행되지 않을 경우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팬덤의 무조건적인 거부에 직면할 수 있다

인구절벽의 문제를 출산지원금 지급 공약과 정책을 앞세워 해결하려는 것은 출산과 양육의 장소인 가정을 아기생산공장으로 퇴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녀의 출산과 양육은 기본적으로 인간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본능적·사회적 행위이다. 여기에 경제와 안보와 문화에 투입될 직능적 인력의 확보와 유지를 부가적인 목적으로 추가할 수 있다. 따라서 출산과 양육의 활성화를 위해 기본적인 목적을 등한시한 채 시장경제적 원리에 따른 부양책을 남용할 때,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투입되는 예산이 눈먼 돈으로 전용되어 막대한 국고손실을 초래할 수 있으며, 국민과 정파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양분화할 수 있다.

백 보 양보해서, 출산지원금을 선거용 선물공세로 살포하더라도, 인구절벽을 국운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책을 위해 인간적 설득과 교육을 병행해야 할 시점이다. 부모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터에서 돌아와 깊은 잠을 자고 싶을 때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달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장해가는 아이와의 갈등을 마주하며 해결의 열쇠를 찾는 과정이 무엇을 위한 고통인지?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공유하고, 상담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먼저다. 경제적 가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소설가 알더스 헉슬리(Aldus Huxley)의 소설 '브레이브 뉴월드(Brave New World)'를 떠올린다. 헉슬리는 이 소설을 통해 27세기의 미래사회를 그려낸다. 실업 걱정이 없고 인구절벽의 불안이 없는 미래, 향정신성 약을 허용하고 성인영화를 즐길 수 있는 미래, 성적 자유를 허용하고 어미 아비 노릇이 필요 없는 미래, 하지만 총통 각하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미래, 노동시장의 직능별 수요에 따라 계급화된 인공부화장 아기가 생산되는 미래, 생식기관의 재생 기능이 폐기되고 입 뗄 때부터의 본능적 호칭 ‘어머니’라는 말이 외설이 되어버린 미래. 이런 미래를 어떤 미래라고 불러야 할까.

지금 여기의 몸과 달리 재구성될 미래의 몸이 머리를 감싸 쥔 채 똬리를 틀 듯 웅크린 모습으로 다가온다. 라마르크(Lamarck)의 ‘용불용설’을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직립보행에 알맞도록 꼬리뼈의 흔적만 간직한 우리의 몸은 또 다른 진화의 거울이다. 담뱃갑의 금연 광고처럼 끔찍하지 않지만, 창의성과 생식력이 퇴화 된 변칙의 몸을 만들어 갈 이런 사회를 “눈부신 신세계”로 번역해야 할까

한국외국어대학교, 오클라호마 시립대 대학원
한양대학교 대학원(영문학 박사)
<창조문학>(1997)과 <시문학>(2022)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이영철 시인/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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