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호경  변호사

주(周)나라 때 일이다. 어느 날 백락(伯樂)에게 말 장수가 찾아와 자기 말을 좀 감정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말을 팔려고 시장에 내놓은 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니 한번 봐 달라고 사정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 부탁이 너무도 간절하기에 백락은 말 장수와 함께 마장에 가서 그 말을 보았다. 뜻밖에도 말 장수가 자랑할 만한 훌륭한 말이었다.

백락은 자기도 모르게 경탄하는 눈빛으로 다리와 허리, 엉덩이와 목덜미, 그리고 눈동자와 털의 색깔 등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아깝다는 표정을 지은 채 그 자리를 떠났다. 당대의 최고의 말 감별사의 이런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 말을 서로 사려고 하는 바람에 그 말 값은 순식간에 열 배나 껑충 뛰었다. 이 준마(駿馬)는 백락이 있었기에 그 진가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백락이 한 번 돌아만 봐도 말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백락일고(伯樂一顧)’의 고사로서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래 백락은 전설에 나오는 천마(天馬)를 주관하는 신선(또는 별자리)을 말하는데, 주나라의 손양(孫陽)이라는 상마가(相馬家)가 워낙 말을 보는 눈이 뛰어나서 그렇게 불린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초(楚)나라 왕의 명을 받고 좋은 말을 구하러 나선 백락이 어느 길에서 소금장수의 마차와 마주쳤다. 소금마차를 끌던 말은 비쩍 마르고 볼품없이 생겨 일견 쓸모없어 보였지만 백락은 단번에 그 말이 준마임을 알아챘다. 불세출의 천리마로 태어나 천지를 호령하는 왕을 태우고 온 세상을 달려야 할 말이 제대로 먹지도 못해 비쩍 마른 채 소금수레나 끌고 있는 모습을 보자 백락은 절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입고 있던 베옷을 벗어 말의 잔등을 덮어 주었는데, 그 말은 백락이 자신을 알아주는 데 감격하여 하늘을 향하여 길고 우렁차게 울었다고 한다. 

이렇게 백락처럼 준마를 알아보는 뛰어난 안목은 적시에 인재를 찾아내어 등용하는 능력으로 비유되곤 한다.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적토마(赤兎馬)도 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만 그 능력이 발휘될 수 있듯이 지혜로운 신하도 이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현명한 군주가 있어야만 그 재능이 발휘될 수 있다는 뜻이다. 흔히들 “항우(項羽)는 백락을 얻지 못해 패했고, 유방(劉邦)은 백락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는 항우가 여러모로 유방보다 능력이 뛰어나지만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반면, 유방은 스스로의 역량은 쳐지지만 백락같이 인재를 정확히 식별하는 안목이 있었음을 말한다. 사실 책사 제갈량(諸葛亮)도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발탁했기에 그 지모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는 〈잡설(雜說)〉이란 글에서 “세상에는 백락이 있고 그리고 나서 천리마가 있는 것이다[世有伯樂然後有千里馬].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그러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천리를 달리는 명마라 해도 백락이 없으면 평생 조랑말 취급을 받으며 혹사당하거나 마구간에서 하찮은 말들처럼 그냥 죽어간다.”고 했다. 임명권자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 해도 그 능력을 펴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렇다. 어느 조직이건 흙 속에 묻혀있는 보석 같은 인재를 찾아내어 그 지혜를 활용하도록 하는 것은 리더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조선 세종(世宗) 조에 국세(國勢)를 떨치고 문화적 황금기를 누린 것은 그 당시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과연 세종 치세(治世)에 맞춰 유난히 뛰어난 인재가 많이 태어났다는 말인가? 물론 상대적으로 볼 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뛰어난 인재들을 조정으로 발탁하여 국사에 임하게 한 것은 바로 백락의 눈을 가진 세종이다. 세종실록  61권(15년 9월 17일)을 보면 “… 총명하고 민첩한 자를 가리어 … 전심으로 학업을 닦게 하여야 후일에 크게 쓰이게 될 것이다[專心鍊業 後日大用].”라고 지시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세종이 인재를 잘 키워 등용하는 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세종이기에 한글을 창제하고 재위 32년 동안 국운 융성과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인사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인재를 잘 뽑아서 적재적소에 배치, 그 능력을 잘 발휘하게 하면 모든 일을 잘 풀리고 순리대로 돌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사람을 잘못 뽑았다가는 기존의 조직, 수행하는 업무, 대내외의 신뢰관계 등 모든 것이 다 틀어져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적 의미 또한 있다고 하겠다. 유감스럽게도 요즘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많이 도는 것은 뒤의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인사가 다 망쳤다고 아예 대놓고 ‘인사망사(人事亡事)’라고까지 하니 말이다.  

한 번은 친구들끼리의 사적 모임에서 누군가가 고위 공직자 중에서 백락이 준마를 선별해 내듯이 제대로 발탁된 인사가 있는지 거명해 보자고 제의를 했다. 그런데 별다른 반응 없이 한참 동안 침묵의 시간만 흘렀다. 그러다가 다른 한 친구가 나섰다. 그 친구 말이 “우리 그러지 말고 ‘골 빈 말’, ‘비루먹은 말’, ‘사료만 잔뜩 처먹는 말’, ‘자기 새끼들만 챙기는 말’, ‘히히힝 아첨하기 바쁜 말’을 찾아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시끄러울 정도로 많은 인사들의 이름들을 앞다투어 불러대는데 나는 듣기 싫어서 그 자리에서 나와 버렸다. 
 
정말 이 시대에는 준마가 보이지 않는다. 백락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백락은 어떻게 하였기에 그렇게 말을 정확히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것은 ‘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나 나름대로 답을 찾아내 보았다. 그렇다. 백락은 오로지 제대로 된 말을 찾아내겠다는 진실된 마음으로 말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정확한 기준에 의하여 공정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결코 말 소유자나 추천한 사람의 청에 얽매이거나, 어느 말을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 기준을 맞추려고 하거나, 배제 기준에 해당하는 말을 보았을 때 ‘이 정도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이다.’라고 하거나, 무책임한 파워 블로거들처럼 대가를 받고 아무 말이나 마구 추천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그 말이 자신이 정한 기준에 맞는 잠재능력과 자질을 갖춰서 앞으로 준마로서 제 몫을 할 것인가만 생각했을 것이다. 

아, 이 시대의 백락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