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강사

14세기의 유럽은 오늘날과 비슷하게 대형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 중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펜테믹과 비슷한 흑사병이라 할 수 있는 전염병이 거의 전 유럽을 휩쓸었다. 수많은 유럽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이 1348년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에 아비뇽에서 발병하였을 때, 그 도시 역시 인구 절반 이상이 사망하여 그때의 상황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당대인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먼저 당시 교황청 채플에서 성가대장과 음악 교수로 활동하였던 루이 상투스는 흑사병에 관한 몇 가지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는 흑사병의 발발을 기본적으로 이 세상에 죄가 만연하여 그 죄에 대한 하느님의 보복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아비뇽에서의 흑사병 발병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유로 헝가리 왕자 안드류를 살인한 사람 즉 조안나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 아비뇽에 오게 된 것이 초봄이었는데, 바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보복으로 생각하였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교회의 수장이었던 교황 클레멘스 6세(1342년-1352년)의 태도에서도 죄에 대한 심판이라는 이러한 태도가 드러났다. 교황은 공식적인 행동으로 사망한 자들에게 대사들(indulgences)을 베풀어 주었고, 이러한 징벌의 원인이 세상에 많은 죄 때문에 하느님의 심판이 도래했다는 강론을 하였으며, 그리하여 신에게 애절한 간구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황 클레멘스 6세는 이러한 흑사병에 대해 자신의 공식적 태도를 표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비공식적 태도에서는 심중에 인문주의자적 경향도 드러내었다. 그는 대재앙에 대해 신학이나 점성술로 정당화하려 하지 않고 과학적인 관심을 지녔다는 것이다. 루이 상투스가 전해주는 바, 클레멘스가 그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알아내고자 아비뇽에서의 흑사병 희생자들에 대한 시체 해부를 시행하도록 명령하였다는 것이다.
 

아비뇽 교황청. 사진=위키백과

 
그러한 실험들이 이 시기에 알려지지 않았던 일은 아니었다. 일례로 1340년 몽펠리에 대학교의 정관은 총장에게 적어도 2년에 한 번씩 의학생들이 해부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시신 한 구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이 대학교들 밖에서 취해지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그리고 한 명의 교황이 그러한 시기에 공식적으로 그러한 일을 시도하였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교회는 인간의 육체를 훼손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였는데, 이는 신앙에 근거한 것으로서 육신의 궁극적인 부활이 사도신경에 들어있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반대는 1299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법령에 의해 강화되었는데, 즉 시신을 분할하고 사지를 다른 장소에 매장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설령 클레멘스가 이러한 관행을 따랐던 프랑스 왕실가문의 사람들에게 특전을 베풀었을지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클레멘스가 공식적으로 시체 해부가 일어나도록 교황 법령을 명하거나 허용하였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할 만 일이다. 

따라서 그들의 시체 해부는 의학 학문에 대한 클레멘스의 개인적 관심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보이며, 그러한 점에서 그것이 신의 의지대로 육체적으로 고통받는다는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신학적인 수용과는 대비되는 관점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흑사병을 차단하기 위한 교황 클레멘스 6세의 과감하고 용기있는 모습은 오늘날의 코로나를 대처하는 우리들에게 또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