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수 전 KBS 부사장

지난 2020년 12월과 올 2월 초에 세인(世人)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했지만 아주 의미 있는 판결이 두 건이 나왔다. 첫 번째 것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삭제한 혐의로 기소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백종천과 전 안보정책비서관 조명균의 사건으로, 대법원이 1~2심의 무죄를 뒤집어 유죄(有罪) 취지로 파기 환송(還送)한 것이다. 

당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느냐의 여부를 놓고고 여야간(與野間) 벌어졌던 정쟁(政爭)이 대통령 기록물 삭제 문제로 비화(飛火)된 것이다. 2012년 정문헌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 포기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여야 공방 끝에 이듬해 7월 대통령기록관에서 열람하기로 합의했지만 회의록이 삭제된 것으로 확인되자 새누리당은 참여정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대화내용을 없애려고 전산 기록을 무단 삭제했다고 판단하고 2013년 11월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손상 혐의로 기소했다. 말하자면 국가의 중대한 사초(史草)를 논란이 일기 전에 절묘하게 삭제한 사건으로 보였다. 

대통령 기록물 삭제와 유사한 공문서 삭제 사건이 탈원전 정책과 관련한 문서의 무단 삭제 사건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를 무력화하기 위하여 2019년 12월 1일(일요일) 밤 11시 24분부터 2시간 동안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월성1호기 관련 자료를 무단 삭제한 것이다. 파일(File)과 포더(Folder)는 물론 청와대 보고 문건도 삭제를 한 것이다. 감사 직전에 삭제를 한 이유에 대한 대답이 걸작이다.

“신 내림을 받은 것 같았다”란다. 북한에 원전 건설 지원과 관련된 문서, 청와대 보고문서 등을 대거 삭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개인 판단에 의해서 그런 무지막지한 행위를 했을까? 더 높은 데서 더큰 힘을 가진 자가 지시를 했다고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 자가 바로 살아있는 신(神)인가? 비밀스런 자료들이 이동식기억장치(USB)에 담겨서 남북정상간 만남 시에 북측으로 전해졌다는 의혹이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번졌다. 국가 정상간 만남에서 주고받는 물건은 모두 공표하고 관리하는 게 국정의 기본이 아닌가? 마치 NLL 포기 대화록과 유사한 의혹이 드는 게 정상적인 시각이라고 본다. 

두 번째 것은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JTBC와 손석희 사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7,000만원의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판결의 결과는 개인과 언론사 사인간(私人間)의 소송이지만 내용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공적업무와 관련된 사건이고 검언유착(檢言癒着) 사건으로 볼 수 있다. JTBC는 윤 전 고검장이 윤중천씨와 만나 골프를 치거나 식사를 함께했다는 진술과 정황(情況)이 확인된다고 보도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같은 취지의 내용이 기록되어 공표되었기 때문이란다. 이번 판결로 보아 법무부 산하 기구가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濃厚)하다. 윤 전 고검장의 고소로 보고서 작성에 관련된 당시 위원장대행 정한중 교수, 주심위원 김용민 의원, 조사실무 이규원 검사 등에 대한 수사 결과와 판결이 나오면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다. 과거사(過去事)를 바로 잡는다면서 허위사실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사초(史草)를 허위로 쓰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사초(史草)란 무엇인가? 좁게는 실록(實錄)을 쓰기 위한 원고로서, 사관(史官)이 기록하여 둔 사기(史記)의 초고(草稿)를 줄여서 사초라고 했다. 넓게는 사관의 기록과 그 때 그 때의 국가 정사에 대한 기록을 모은 시정기(時政記)와 관련 모든 자료를 말한다. 국정에 관한 총체적인 자료가 모두 사초가 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8명의 사관(봉교2, 대교2, 검열4)을 두었는데, 경사(經史)와 문장(文章)이 좋은 인재로 뽑았다. 이들은 번(番)을 갈라서 승지와 함께 숙직을 하면서 조회(朝會)·조참(朝參)·상참(常參)·윤대(輪對) 등정례회의는 필히 참석하였다. 또한 정치를 많이 논하던 경연(經筵)·중신회의(重臣會議)·백관(百官)회의에도 참석하여 회의 내용을 기록하였다. 두 명이 좌우에 입시(入侍)하여 기록하는데 말이나 상소문 등을 기록하는데 글씨를 매우 빨리 써야 하므로 주로 초서(抄書)로 썼다. 

두 명이 하는 것은 주나라 때부터 전해 오는데, 좌사(左史)는 임금의 왼쪽에서 그 동작을 기록하여 태사(太史)라고도 하고, 우사(右史)는 임금의 오른쪽에서 그 말한 바를 기록하여 내사(內史)라고도 했다. <예기(禮記)> 옥조(玉藻)편에는 “임금이 동작하면 좌사가 이를 기록하고(동즉좌사서지 : 動則左史書之), 말하면 우사가 이를 쓴다.(언즉우사서지 : 言則右史書之)”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한서 예문지(漢書藝文志>에는 이와 반대로 “좌사가 말을 기록하고(좌사기언 : 左史記言), 우사는 사실을 쓴다.(우사기사 : 右史記事)”라 되어있다. 후한의 장제(章帝)와 반고(班固)가 편찬한 <백화통덕론(白虎通德論)>에 <예기(禮記)> 옥조(玉藻)편의 표현이 있고, 같은 시대 서간(徐幹)이 지은 <중론(中論)> 허도(虛道)편에는 “좌사는 사건을 기록하고(좌사기사 : 左史記事), 우사는 말을 기록한다(우사기언 : 右史記言)”로 되어 있다. 
   
또 후한시대 공자의 후손 공부(孔鮒)가 지은 <공총자(孔叢子)>의 답문(答問)편에도 “움직이면 좌사가 쓰고(거즉좌사서지 : 舉則左史書之), 말은 우사가 쓴다(언즉우사서지 : 言則右史書之)”고 했다. 반면에 후한의 손열(荀悅)이 쓴 <신감(申鑒)>의 시사(時事)편에는 “좌사는 말을 쓰고, 우사는 행동을 쓰는데, 행동의 기록이 춘추이고 말의 기록이 상서와 국어이다. 임금의 행동을 기록하되 착함과 착하지 못함, 성공과 실패를 남기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한다.(左史記言, 右史記動；動為《春秋》, 言為《尚書》《國語》；君舉必記, 臧否成敗, 無不存焉)”라고 했다. 여러 기록들이 좌우 서로 상반되지만 모든 걸 빠짐없이 기록하라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사관이 기록할 것 중에 모훈(謨訓)·명령(命令)·문장(文章)은 모두 말이고, 기거(起居)·조회(朝會)·순수(巡狩)는 모두 행동이다. 조선왕조는 역사 기록을 많이 남겼다. 임금이 죽으면 재위 기간에 기록하고 모은 모든 사초로 방대한 분량의 <실록>을 편찬했다. 승정원에서는 상서(上書)와 교서(敎書)들, 관원들과 나눈 공식적인 대화를 모아 <실록>보다 더 방대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작성했다. 정조대부터는 국정에 관한 제반사항들이 기록된 일기인 <일성록(日省錄)>도 편찬했다. 이들은 왕실 차원의 국가기록물이고, 각 관청에서 생산하거나 주고받은 문서들도 <등록(謄錄)>으로 관리했는데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기록을 중시한 조선에서 사초를 다루는 것을 매우 엄격한 업무였다. 따라서 허위기록이나 무단 정정, 삭제나 유실에 대한 처벌이 아주 엄했다. 특히 사관에 대한 처벌은 매우 강했다. 사관(史官)이 자기에게 관계되거나 다른 사람의 청을 들어서 그 사적(事迹)을 없애려고 권종(卷綜)을 완전히 훔친 자, 사초를 도려내거나 긁어 없애거나, 먹으로 지우는 자, 사초(史草)의 내용을 외인에게 누설하는 자는 참수형에 처했다. 동료 관원으로서 불법(不法)을 알면서도 고하지 아니하는 자는 참수형보다 한 단계 낮았으나 무오사화(戊午史禍) 이후 똑같이 참수했다. 

사관이 사망하고 그 가족들이 사초를 관리하다가 유실하거나 화재로 소실될 경우에도 처벌이 강력했다. 벌금으로 백은(白銀) 20냥을 내고도 자손들이 벼슬에 진출을 못하는 금고형(禁錮刑)을 받았다. 세종 7년 을사(1425) 4월 29일(무진)에 사초를 멸실한 사람에게 형을 가했는데 다음과 같다. “죽은 참지의정부사사 박석명(朴錫命)의 아들 박거비(朴去非)와 죽은 판서 이승상(李升商)의 아내 이씨와 죽은 검한성윤(檢漢城尹) 배중륜(裵仲倫)의 아들 배구(裵絇)와 죽은 사예(司藝) 최진성(崔進誠)의 딸 최이승(崔尼僧)과 김한로(金漢老)·김과(金科)의 아들 김우부(金右副) 등이 사초를 단단히 간직하지 못한 탓으로 불에 타서 유실하여 각각 백은(白銀) 20냥을 징수하고, 자손은 금고(禁錮)하게 하였다.” 여기서 김한노는 세종의 형인 양영대군의 장인이다. 같은 해 5월 24일에 양영대군이 세종에게 김한노의 사초 유실에 대한 벌로서 백은 20냥은 내지만 자손들의 금고(禁錮)는 풀어달라고 쪽지 편지를 보냈다. 세종이 내시 최습(崔濕)을 보내 원칙이라서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예종 1년(1469) 4월에 봉상첨정(奉常僉正) 민수(閔粹)의 사초(史草) 때문에 옥사(獄事) 일어났다. 세조(世祖)가 죽은 후 <세조실록>을 편찬하려고 할 때, 민수가 전에 사관(史官)으로서 사초에 바른 말을 썼기 때문에 신숙주 등에게 원망을 받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기사관(記事官) 강치성(康致誠)을 통해 자기가 쓴 사초를 빼내어 고쳐 썼고, 정언(正言) 원숙강(元叔康)도 같은 짓을 하였다. 이 일이 발각되어 민수는 전에 예종이 세자일 때 서연관(書筵官)이었고 외아들이라는 이유로 선처하여 관노(官奴)가 되었고, 강치성·원숙강은 처형되었다. 이처럼 사초의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사초는 실록이 완성되면 세검정의 조지서(造紙署) 근처의 개천에서 사초(史草)·초초(初草)·중초(中草)·정초(正草) 모두를 물에 씻어내고 한지는 재활용했다. 

신 내림 받은 사람처럼 진보진영 인사들은 전산기록을 때 맞춰 잘도 지운다. “NLL에 관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이었다고 드러나면,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습니다.” 문대통령이 2013년 6월30일 자신의 블로그에 정치생명을 건 발표를 했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2013년에 ‘NLL 포기’ 발언을 감추려고 백 전(前) 실장 등이 대통령기록물인 회의록 초본을 무단으로 삭제했다고 보고 이들을 기소했다. 대법원은 해당 기소 내용을 사실상 인정한 판결을 한 셈이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의 공허(空虛)한 거짓말은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27번이나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公言)했지만 4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못 잡고 있다. 

소득이 주도하는 성장과 일자리를 마구 늘려서 국민들을 잘 살게 한다더니 자영업자, 서민들만 소득이 줄어서 낭패다. 야당 땐 나라 빚이 걱정이라더니 자기 돈이 아니라서 마구잡이로 나라 빚을 키운다. 2020년 12월 9일에 코로나 백신 4,400만 명분 확보해서 올해 2월이면 접종(接種)을 한다더니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OECD 37개국 중 백신 접종 최고 꼴찌로 전락했다. K방역으로 정상적인 일상을 되찾을 거라 수차례 공언했지만 서민들의 삶만 더욱 피폐(疲弊)해 졌다. 대규모 구내식당은 전염이 안 되고 소규모 식당은 전염이 되며, 밤 9시 넘으면 바이러스도 잠을 자느냐고 서민들이 아우성이다. 

국정 최고책임자를 닮았는지 사법부 최고책임자의 법관탄핵 관련 거짓말과 허위 공문서 작성이 압권(壓卷)이다. 광주법원장 임명 관련으로 또 거짓말을 했단다. 김명수(金命洙) 대법원장이 아니라 허언(虛言)의 명수(名手)인 허명수(虛名手)로 불린다. 실체적(實體的) 진실만을 추구해서 판결을 해야 하는 민주의 보루(堡壘)인 사법부 수장(首長)이 이정도면 국가의 미래가 암담하다. 누굴 믿고 재판을 맡길까? 집권 초부터 법무부 장·차관들의 행태는 더욱 가관(可觀)이다. 허위 혼인신고자, 자녀입시 부정과 허황된 어록(語錄) 제조기, 검찰총장 직무정지·징계 등 헛발질의 대명사, 대통령의 재가(裁可) 전에 검찰간부 인사안 발표, 술에 취해 택시 기사 폭행 등등 온갖 미디어를 도배하는 인사들이다. 허위공문서로 출국금지, 비리 혐기로 기소된 자, 검언유착(檢言癒着)을 획책하는 검찰 모리배(謀利輩)도 고위직에 버티고 있다. 사회지도층 특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급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전 국민들을 오염(汚染)시킨다. 더구나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이 오염될까봐 두렵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 왜 이렇게 거짓말이나 부정행위를 할까? 가정교육과 인성교육이 잘못되어서인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전 시카고대 게리 베커(Gary Becker) 교수는 “처벌에 비해 부정행위로 얻는 이득이 크면 윤리도덕을 떠나 누군가는 범죄자가 된다.”는 범죄의 합리성(合理性) 이론을 주장했다. 따라서 범죄의 처벌도 생산성이 별로 없는 감옥살이 보다는 국가 수입을 올리는 합리적 벌금형이 낫다고 봤다. 반면에 듀크대 행동경제학 댄 앨리얼리(Dan Ariely) 교수는 부정행위의 발생을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도덕적 동기와 경제적 동기에 의해 행동하지만, 이들이 서로 상충되기에 인지적 유연성(認知的 柔軟性)을 발휘해 자신이 정직한 척하면서 부정행위로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저서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에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는 부정행위의 합리화 능력, 남의 눈을 의식한 이익 충돌의 정도, 창의성과 부정직함, 자아 고갈(枯渴), 자기기만(自己欺瞞), 사소한 부정행위의 발전, 타인을 위한 협력적·이타적 부정행위, 부정행위의 전염(傳染), 부정행위의 모범 사례(事例) 등의 요인으로 부정행위가 증가한다고 보았다. 지도층의 거짓말과 부정행위가 모범사례가 되고, 국민들에게 전염이 된단다. 상습적인 거짓말쟁이의 뇌에는 정상인보다 회백질(灰白質 : Grey Matter)이 14.2% 적고, 전두엽(前頭葉)의 백질(白質 : White Matter)이 22~26% 많다고 한다. 앞으로 고위공직자는 종합검진에서 뇌 검사를 꼭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