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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는 통치자가 곧 군사지휘관이고, 구성원은 군인이었다. 한반도 역사를 관통하는 공통의 전략은 ‘청야입보(淸野立保-모든 식량을 없애고, 성(城)에서 장기적으로 저항)’로서 ‘수세(守勢) 이후 공세(攻勢)를 추구’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대응하는 전략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호(ambiguity)하여 무엇을 추구하기 위함인지에 대한 구별이 쉽지 않다. 이마저도 조선 시대부터는 軍의 기강 해이 현상이 심화하면서 ‘전략’으로 표현하기도 난감한 구조인 한편으로 주요 직위자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와 모호한 처신, 개인적인 일탈 및 욕망은 처처(處處)에서 느껴진다.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 압박에서 벗어났지만, 이후 3년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정부 수립을 선포할 수 있었다.
최근도 양 진영 간 첨예하게 대립한 결과 정작 국가 존립에 필요한 국제사회와의 다양한 관계 설정, 안보⋅경제⋅민생문제 등은 켜켜이 지뢰밭이다. 이러한 각박한 현실을 주도할 계층들은 정작 우물에서 숭늉을 찾고 있다. 여기에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로 믿어온 軍에 대한 국민의 마음도 편치 않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과 수준이 외형에 머물러 있고, 핵심을 비껴가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 국민이 ‘국가⋅군사적 위기관리 및 대응의 주체’에 비판의 눈길을 보내는 현실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계기가 軍의 문제만은 아니다. 금강산 관광객이 피살(2008)된 후 대통령에 보고된 시간은 9시간 45분이 지났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2010), 세월호가 침몰(2014) 되었을 때 정부의 통합 컨트롤-타워는 찾기 어려웠으며, 관련 기관의 초기 대응과 지휘 통제체계는 무너졌고, 기초 원칙도 없이 허우적거렸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사례를 살펴보자. 2017년 8월, 합참은 화성-12호가 발사된 후 3시간 23분이 지나서야 항공기 탑재 폭탄으로 대응했고, 9월 발사 때는 6분 후에 현무와 ATACMS로, 11월에는 즉각 대응하였다. 2022년 3월 24일 북한은 화성-17 탄도미사일을 무경고 하에 발사하였다. 합참은 1시간 51분이 지난 다음 현무-Ⅱ, ATACMS, 해성-Ⅱ, JDAM을 사격하고는 “즉각적인 대응과 응징능력, 의지를 보여줬다.”라고 발표했다. 선제타격 개념인 ‘킬 체인’도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30분 이내에 대응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한 꺼풀 더 들어가 보면, 작동한다는 C4ISR 체계는 무슨 역할을 담당하는지! 표적이 파괴당하고 나서 실시하는 사격훈련에 무슨 의미와 효과가 있다는 것인지! 답답한 한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한국군의 탐지(식별) 체계 및 대응 과정을 살펴보자. 합참이 발표한 대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때 즉각 대응하려면, 통합된 미사일 방어 및 공격체계가 가동되어야 한다. 그런데 추적-경보-전파는 공군이, 대응 사격은 육군 등이 각자 대응하고 있기에 통합된 지휘 통제나 작전 수행 체계는 찾기 어렵다. 사전에 통합 및 연동되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변화의 조짐이나 개선 노력은 찾기 어렵다. 항시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다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응 사격훈련만 의례적으로 반복한다. ‘버스가 떠난 뒤에 손드는 격’으로 어느 가수가 부른 ‘뒤늦은 후회’를 떠올리게 된다. 국가 보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군사조직이 가장 먼저 기본이 되어야 할 소명의식(Calling)은 사라지고 일반직업인(Political Officer)들로 메꿔진 유인(誘因)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현실과 괴리된 위기관리체계, 탄도미사일 도발 등에 대한 Low-Level의 대응수준, 경계작전의 실패, 유사한 사건⋅사고의 대응에 실패한 선례(先例)를 그대로 답습한 결과다. 이 현상은 각군(各軍)의 이기주의와 맞물리면서 통합된 위기관리체계와 일원화된 지휘 통제⋅작전 수행 체계의 구조적 문제마저 ‘운영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근자감에 단순함(愚)까지 더해졌다.
둘째, 초급장교 양성 과정에서부터 혁신⋅창조적 정신을 보유한 리더(Leader)로서의 기본 소양이 필요한 데 정형화된 매니저(Manager)를 양성하면서 이를 리더라고 착시한 결과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무지(無知-ignorance)의 지(知)’를 이해하지 못한 업보이지 않나 싶다.
셋째, ‘혁신⋅창조적인 인식의 시급함’보다 ‘외형(外形)적 사고’에 치우친 결과다. 정형화된 사고방식만으로도 권한을 누릴 수 있다 보니 변화해야 한다는 심각성과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 특유의 자존감(自尊感)과 독선적 의식에다 순응하지 않는 상대는 사회성(주변 관계)이 부족하다는 굴레를 덧씌운다. 이러한 현실은 소명자(召命者)들의 인식체계와 다르기에 아쉽다. 기득권 집단의 일원이라는 태생적 환경은 좋지만, 역량의 한계가 드러나 보인다. 결론적으로 정형화된 패턴(pattern)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혁신은 구호(slogan)에 불과하다.
김성진 (사)한국유권자총연맹 국방정책포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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