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원은 어디쯤일까?
2016년 영국·케냐·호주 등 국제 공동연구진이 아프리카 케냐에서 10,000년 전에 벌어진 참혹한 전쟁의 흔적을 찾아냈다고 한다. 케냐 투르카나 호수 인근에 있는 나타룩(Nataruk) 유적지에서 27구의 유골을 발견, 비교적 온전한 12구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매장된 흔적이 없으며, 10구에서는 둔기에 의한 머리 외상, 화살촉 같은 뾰족한 무기에 의한 목 외상 등 치명적인 상처, 일부 유골은 돌칼이 박힌 채로 발견됐다. 성인 남녀는 물론 어린이도 있었고, 임신한 여성도 발견됐다. 일부 유골은 손의 상태를 볼 때 손이 묶인 채로 살해당했고, 머리가죽이 벗겨지고 사지를 일부러 자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오래된 전쟁의 대표적 유적으로는 이집트와 수단 북쪽 국경근처 나일강 유역에 발견된 신석기시대 묘지인 제벨 사하바(Jebel Sahaba)라고 할 수 있다. 제벨 사하바에 묻힌 시신들은 약 13,000-14,000년 전으로 매장된 시신의 약 40%는 치명적인 상처의 흔적으로 즉사 또는 짧은 시간 내에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들 상처는 거의 상체의 치명적인 부위, 즉 가슴과 목, 그리고 머리에 집중되어 있으며 화살 등 무기에 의한 것으로 전투 또는 전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전하는 날짜까지 추정이 가능한 최초의 전쟁은 기원전 1457년 4월 16일에 일어난 ‘메기도 전투’라고 한다. 이집트와 가나안 땅 일대의 민족들 사이의 전투로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1만 2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메기도성을 공격하여 7개월 만에 함락시켰다고 한다. 역시나 전쟁의 원인은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탈환으로 경제가 그 원인이며, 승리의 동인 역시 경제력과 당시의 선진기술로 하루에 14톤의 식량과 건초, 물 9만ℓ를 대군에 공급하는 병참선 유지와 전차 바퀴의 개량과 개량형 활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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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기록된 오래된 대규모 전쟁은 아마도 모두가 알다시피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이다. 기원전 109년-108년까지 이어진 전쟁으로 고조선이 종말을 고했다. 당시 한반도 남부와 한나라의 왕래 및 무역을 우거왕(右渠王)이 방해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한 무제가 전쟁을 일으켰다. 한나라는 왕검성(王儉城)을 공격하고 우거왕은 성문을 굳게 닫고 저항하면서 수개월 간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1년간의 전쟁으로 성내 사람들은 지쳤고, 지배층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우거왕은 살해되었으나, 왕검성은 쉽사리 함락되지 않았다. 거듭된 전투 끝에 우거왕의 대신이었던 성기(成已)가 죽은 후에 전쟁이 마무리 되었다.
전쟁 혹은 전투는 고대의 국가권력이 형성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희망에 찬 선사시대 평화이론은 구석기말 신석기 초반기의 유적들로 인해 산산히 부서졌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전쟁도 함께 시작된 것은 아닐까? 인류 이외에도 이 지구상에 무리생활을 하는 모든 동물 종들은 전쟁을 치른다. 개미, 벌, 침팬지, 물개 등.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긴 오늘 지금도 지구촌은 전쟁 중에 있으니 딱히 변명할 거리를 찾기가 쉽지만은 않지만...
전쟁이 항상 공격자의 약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곽, 요새 등 방어를 기본으로 하는 군사시설들이 있다.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3가지, 의, 식, 주 중에 주거지는 외부의 자연을 비롯한 인간의 공격까지도 방어해야만 하는 건축술의 연장으로 전쟁을 대비하는 확장된 개념의 방어 및 군사시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구의 성곽 및 요새 발달사 연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선구자적인 인물이 바로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 Pollio, ?-?)이다. 그는 BC 1세기 경에 활약한 고대 로마의 기술자, 건축가로 그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군단의 건축기사로 스페인과 갈리아 등에서 복무한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군막사, 공성장비, 가도, 다리건설 등의 공병일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로마건축을 집대성한 책 <건축십서> 총10권을 남겼다. 그 내용은 도시계획, 건축일반론, 건축재료, 신전건축, 그리스 기둥 양식과 사용법, 극장, 목욕탕과 같은 공공건물, 개인건물, 바닥과 회반죽 장식, 물의 이용, 시계, 측량법, 천문학, 건설·토목 설비 기계 및 군사무기 등이 망라되어 있다.
<건축십서> 1권 5장에는 도시의 성벽과 첨탑을 어떻게 구성해야하는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벽 두께는 성벽 정상부에 설치된 통로를 무장한 병사가 서로 교차해 지나갈 수 있는 폭으로 구축해야 한다. 통로 위에는 불에 그을린 올리브 나무를 촘촘하게 박고 벽 양측면을 통나무로 결합하면 이는 마치 철로 단단히 결합시킨 것처럼 오랫동안 유지된다. 일단 불에 그을린 통나무는 부패하지 않고 비바람이나 세월이 오래지나도 상하지 않으며, 심지어 땅속에 묻거나 물속에 놓아두어도 용도상의 결함이 없이 영구히 간직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벽에 통나무를 연결해 놓을 경우 성벽 뿐만이 아니라 지반 벽체 및 기타 벽체도 썩지 않은 채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한국의 성곽유산은 그 분포범위가 한반도 전체에 걸쳐 있으며, 중국의 동북지역과 러시아 연해주까지 확인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성곽은 대략 몇 개 정도나 그 숫자가 될까? 믿거나 말거나 대략 2,000개에서 3,000개의 숫자를 헤아린다고 한다. 한국은 성곽의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엄청나게 많은 숫자에 한편으로 가슴 뿌듯하며, 아 역시 우리나라는 튼튼한 성곽을 가진 나라임에 자긍심이 솟아오르는 듯 하다. 유럽의 성곽 숫자를 대략 더듬어 보기 전까지는.
앞서 이야기한 로마 비트루비우스로부터 시작된 성곽들은 과연 숫자가 몇 개나 될까? 성곽하면 떠오르는 나라들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이 쉽게 연상된다. 유럽의 기타 나라들에는 그 숫자를 확인하기 어려운 반면, 독일 한개 나라의 예만 들어도 15,000개에서 20,000개를 헤아린다고 한다. 독일의 면적이 한국의 3.5배에 달하고 평지가 많다고 쳐도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한국에서는 대략 성, 성곽, 요새 등으로 번역하지만, 유럽에서는 그 명칭과 개념이 다르게 분류된다고 한다. 일단 가장 흔한 성(Castle, 독일어: Schloss, 불어: Château)이 있다. 성채도시인 부르그(burgh, 독일어: Burg, 불어: Bourg), 시타델(citadel, 독일어: Zitadelle, 불어: Citadelle), 성곽(fortress, 독일어: Festung, 불어: forte), 그리고 방벽인 월(Wall, 독일어 : Wall, 불어: Mur), 이외에 최후의 탑, 아성 정도로 번역되는 킵(keep)이 있다.
지구촌 곳곳의 전쟁과 군사유산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성곽의 우수성을 표출하기 보다는, 그렇다고 유럽의 성곽들에 비해 왜소함을 느끼기 보다는, 사실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한 중동지역과 인도의 성곽은 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임을 감히 장담한다. 이제 전쟁은 박물관 전시실로, 군사유산은 도시민들의 교육의 현장 내지는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
다시 한번 앞서 이야기한 로마 비트루비우스 이야기를 꺼내자면, 그에게 있어 『건축십서』의 핵심은 새나 벌이 둥지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방이며, 따라서 건축의 재료는 자연에서 구한 것이여야 하고 인간에게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건축 구조물은 세 가지 본질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견고함(firmitas)과 유용성(utilitas), 그리고 아름다움(venustas)이라고 한다. 사실 비트루비우스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재조명 되었는데, 그의 <건축십서>는 1414년 피렌체에서 재발견, 1486년 로마에서 처음 인쇄, 이후 조반니 조콘도(Giovanni Giocondo)가 1511년에 해설과 삽화를 넣은 라틴어판을 출간했다. 이탈리아 번역판은 체사리아노(Casare Cesareiano)가 1521년, 바르바로(Daniel Barbaro)가 1556년에 출판하였다.
이후 르네상스 건축가들에게 빠르게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으며 고대 로마 건축 연구 및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지금 21세기에도 비트루비우스의 재유행을 희망해 본다.
참조: 이코포트 사무총장 조두원 박사의 ‘서구 요새 발달사 연구-비트루비우스부터 보방까지’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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