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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를 전쟁의 승리나 영토의 확장 따위로 파악할 경우 우리는 보잘것없는 역사를 지닌 민족이 된다. 그러나 문화의 힘, 특히 출판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살피면, 민족의 위대성이 드러난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본다.
세계에서 가장 사납고 강력했던 몽골 군대가 빠른 속도로 중국, 러시아를 모두 정복하고 동유럽까지 쳐들어가니, 모든 나라들이 삽시간에 무릎을 꿇었음에도 유독 고려인들만 장기간 버텨냈다. 그 비결은 팔만대장경의 조성이다.
11세기 초엽 거란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고려는 대장경을 새기며 외침을 막았다. 13세기에 몽골 군대는 고려에 침입하자마자 무기고가 아니라 대장경을 불태워버렸다. 이제 고려인들은 몽골을 문명의 파괴자라고 인식함으로써 전의(戰意)를 더욱 확고히 하며, 굳건한 민족 단결을 이룰 수 있었다. 결국, 고려인들의 대장경 조성사업은 외세의 침략에 대응하여 사십여 년간 항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세계 최강의 몽골 군대를 문화의 힘으로 물리치려 한 것으로 이때의 문화의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 역시 기술의 우위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고려인들의 강렬한 문화의식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금속활자 제조 기술의 바탕이 되는 금속주화 제조는 이미 기원전 5∼6세기에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에서 시작된 기술이었다. 중국에서도 기원전 3세기에 명도전(明刀錢)이라고 하는 청동 화폐를 주조한 바 있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이 이 기술을 이용하여 출판행위를 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고려에는 글을 아는 지식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들은 단기간에 많은 책을 구비하여 읽고 싶었다. 기존의 목판인쇄 기술로는 그들의 독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고, 해판과 조판이 자유로운 활자인쇄방식을 고안해낸 것이다. 결국, 고려인들의 강렬한 문화적 수요가 금속활자 발명을 가능케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서적 간행을 위해서 임금이 직접 나서서 금속활자 주조를 주도했다. 그 목적은 독일의 구텐베르크처럼 돈벌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태종 임금의 주장처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금속활자의 발명과 사용은 한민족의 확고한 문화의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의식의 발현은 15세기의 한글 창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6세기 영국에서는 라틴어 성서가 아닌 영어 성경을 출판하거나 소지하는 사람은 화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실제로 1536년 영어 성경을 번역·출판한 윌리엄 틴들은 화형을 당했다.
이처럼 기존에 있는 언어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유럽의 상황과 달리, 이보다 1세기 전에 최고권력자인 세종은 직접 하층 민중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서 알기 쉬운 글자를 창제했으니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한글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소리글자임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한민족의 문화의식은 현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한국은 20세기에 들어와 외세의 침탈과 식민지배, 국토 분단, 처참한 민족상잔, 극도의 궁핍 등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오늘날 국가 경제력 10위권, 군사력 6위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영화, 음악 등 우리의 예능이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 특유의 문화의식, 문화 사랑이 교육과 출판을 통하여 그 잠재력을 발휘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잠재력을 더욱더 살려나가 문화강국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부길만 출판역사연구회장, 전 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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