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토너스적 욕망에 앞서, 우리 몸의 자존심 먼저

입력 : 24.06.01 11:31|이영철 |댓글 0

 
이영철 시인
 
목소리만 남은 티토너스(Tithonus)가 절규한다. 알프레드 테니슨의 뮤즈가 되어 마른 눈물로 행간의 골을 켠다. 왜 절규할까, 생명연장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왜? 대답은 젊음의 상실이다. 시간의 가혹한 마모질에 잃어가는 젊음. 에너지와 신선함과 자신감과 의욕이 넘치는 젊음이 없는 삶 때문이다. 노인이 되어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서 살아 있지만 죽어가는 또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은 허탈감 또는 절망감을 토해낸다.
 
물론, 100세 시대를 맞이한 우리가 이런 신화적 교훈을 모를 리 없다. 우리 시대는 불멸보다는 삶의 질을 더 중요시한다. 이를 말해주듯, 우리 시대의 삶의 모토는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살아도 죽은 것처럼 사는 삶보다 살아 있으니까 살아있는 것처럼 사는 삶을 지향한다. 우리 시대의 이 같은 모토는 전지전능한 신의 권한과 선심 대신 첨단의학과 헬스와 건강식품에 투자할 노후 자금만 있으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주름 대신 보톡스, 깨진 치아 대신 임플란트, 망가진 장기 대신 인공 장기뿐만 아니라, 자연물과 화학물에서 추출한 각종 건강식품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는 살아있다는 사실의 행복수치를 높이기 위해 첨단 의료과학과 건강식품산업을 활성화해오고 있다.

삶의 만족감과 개선을 위한 우리 시대의 욕망은 첨단의학 및 건강식품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대와 시청자들의 호응도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즉 이런 방송 프로그램들의 경우, 각각의 프로그램마다 시청률이 높은 방송 시간대를 끊임없이 유지하고 있으며, 유명 의료진의 전문적 해설과 진행자들의 흥미로운 진행 솜씨를 기반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성향은 첨단의학의 도전과 성과를 방영하는 프로그램과 건강보조식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첨단의학 프로그램은 과거에 엄두도 내지 못한 불치병을 현대의학이 어떻게 정복해나가는지, 복잡한 시술과 수술의 간편화를 통해 치료과정의 고통과 치료 후의 후유증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그리고 완치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등 첨단의학의 비약적 발전상을 소개한다. 그리고 건강식품 프로그램 역시 건강관리와 증진을 위해 필요한 전문적 정보를 제공해주는 한편, 국내외의 천연자연 재료에서 건강제품을 소개해준다. 두 종류의 프로그램 모두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폭 넓고 높은 수준의 의료정보와 건강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프로그램들이다.

하지만 첨단의학 프로그램은 소개한 검진 및 치료과정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이 얼마나 용이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든다. 다름 아닌, 이름난 명의와 좋은 병원에서 정확한 병명을 알아내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약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수 개월에 이를 수도 있다. 방송까지 탄 경우는 사정이 더욱더 심각할 수 있다. 첨단의학 프로그램에 이어, 건강식품 프로그램 역시 찬양 일색의 출연자 체험담을 무조건 믿을 수 없다. 개인에 따라 효과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짧은 멘트가 말해 주 듯이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며, 병원을 찾아야 하는 환자에게 엉뚱한 기대를 갖게 만들어 치유의 골든 타임을 놓치게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의 멘트를 전제로 ‘나도 체험자처럼’이란 감정이입방식으로 시청자의 체험 동기를 고조시키고, 그 효과를 확인한 것 같은 느낌을 주어 소비심리를 자극한다. 

생명 연장산업 광고는 의료 차원이든 건강식품 차원이든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우리 몸의 자연스러움을 시대착오 또는 결핍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그 결과, 자연스러움을 지키고 개선해 나가려는 우리의 의식과 실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우리의 건강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이 같은 부작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료와 보조식품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앞서, 우리가 가지고 나온 몸에 대한 신뢰와 가치 제고가 먼저다. 

우리 몸의 자연스러움은 당연히 소모된다. 막 쓰면 더 빨리 더 많이. 잘 쓰면 더 천천히 더 조금씩. 나이 먹으면 자연히 생기는 주름을 없애기 위해 벌에 쏘인 것처럼 피부를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주사액을 투입하는 것도, 입과 뿌리와 줄기와 열매에 인간의 추진제를 투입하여 재가공한 자연식품도, 수술대 위에 반쯤 죽은 채로 누워 장기를 떼어내거나 이식하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움의 역행이다. 유전자의 비밀까지 드러난 마당에 뭘 숨기겠느냐고 반문하며 조물주가 몸 안에 숨긴 것조차 공개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의 파괴다. 우리 몸 밖 자연을 훼손한 것처럼, 우리 몸 안의 자연을 훼손하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
이영철 시인/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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