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의 분열정치가 대한민국을 가문 날의 논바닥 갈라지듯 쩍쩍 갈라지게 만든다. 분단의 악업에 분열의 악업까지! 급기야 승자독식을 누리려는 정글화 정치의 야만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낮도 무섭고, 한밤중도 무섭다. 댕기는 핏줄의 인연조차 종적을 감춰버리고, 그 많은 희생을 치른 민주화의 행방도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한국정치가 화해와 조화를 위한 투자보다 대립과 갈등을 위한 낭비벽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들도 한국정치의 이 같은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문제는 국민들 사이의 내부적 분열이다.
정치 참여의지가 높은 상당수의 국민들은 진영논리 속에 갇힌 이런 정치적 현실 속에서 상대방과의 차이를 대상화하고, 극단화하며, 직간접적으로 정치여론의 조성에 관여하거나 정책의 향방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또 다른 상당수의 국민들은 양극단의 비생산적인 분열정치에 의해 낭비되어가는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현상으로 인해 제3의 영역에서 관망하며 피로감과 반감을 쌓아간다.
이와 관련, 평상시에 30% 안팎의 지지율을 확보한 소위 ‘잠룡’이라는 차기 대통령 후보군과 정당들이 대선 또는 총선에서 50% 이상의 득표로 대통령이 되고, 집권당 또는 다수당이 되기 위해 자칭 ‘집토끼’로 부르는 지지층을 진영논리의 앞마당에 꼭꼭 묶어두는 한편, 제3영역의 나뉘먹기를 위해 단 맛 나는 캠페이닝(campaigning)을 기획하고,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다.
기본적 자질과 품격을 갖춘 리더쉽보다 상황적 당위성과 필연성에 적합한 리더쉽을 강조하는 최근의 선거들은 집토끼를 지키기 위한 지역적/이념적 갈라치기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현실적 요구에 적합한 선심성 상품을 표몰이에 활용한다. 예컨대, 지역개발을 내세워 국가재정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무력화하는 선거공약과 기존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국민적 어려움을 들춰냄과 동시에,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달래주기 위해 현금지원을 주장하는 선거공약은 제3영역의 표몰이를 위해 활용되는 대표적 사례들로, 분열정치의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즉 이런 공약들은 정치적 자질과 품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후보를 진영논리의 여세를 몰아 5년짜리 대통령과 4년짜리 의원에 당선시키기 위해 한국정치의 에너지를 비정상적 방법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한편, 국민들의 여론을 찬반양론으로 분열시키며, 국민을 나라 곳간의 빈곤을 걱정하는 국민과 나라 곳간의 여유를 복지에 활용하자는 국민으로 갈라치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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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나라 살림
한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한국은 2024년 현재 14위로 추락했다. 11년 만의 추락이다. 국민총생산(GDP)는 일본에 이어 31위이고, 국가총부채는 박근혜 정부 말 600조에서 문재인 정부 말 1067.4조에 이르렀고, 윤석열 정부 초인 2023년 1134.4조에 이르고 있다.
물론, 국민총생산 대비 국가부채율에 비춰볼 때, 2024년 1분기 현재 우리나라의 부채율이 53,5%로, 주요 선진국들인 일본(254%), 미국(144%), 영국(104%) 그리고 프랑스(117%)보다 절반 정도 낮은 비율이지만,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적 취약점들, 즉 높은 수출도,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안정,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전환으로 인한 생산인구의 감소,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보다 훨씬 높은 가계부채율, 그리고 비기축통화(기축 통화: 미국의 달러, 유로(EUR), 일본 엔(JPY), 영국 파운드(GBP), 스위스 프랑(CHF)) 국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위험 마지노선인 60%에 도달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말해준다.
국민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이외에도,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빌려 쓴 돈이 2023년에 지난 13년 동안 최대 액수인 100조에 이어, 2024년 상반기에 벌써 90조를 넘었으며, 아직도 상환하지 못한 빚이 19조 9천억원이다. 경기부진으로 인해 법인세 세수가 15조 3천억 감소한 것이 주된 이유이지만, 올해 25조로 책정된 소상공인/자영업 구제 지원과 같은 경기부양책도 무시하지 못할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나랏돈을 돈 먼 돈으로 만드는 선심성 정치와 퍼퓰리즘 정치도 자제해야 할 상황이고, 선거 때 두고 보자며 정부를 향해 돈 내놓으라고 얼러 대는 국민도 사라져야 한다.
멈춰버리거나 역행하는 정치 선진화
한국정치가 분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이유는 대통령 중심제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리더쉽에 대한 논의의 빈곤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의 출현은 부당한 권력 남용과 누수는 물론, 부정부패의 감시와 고발을 통해 우리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란 기대를 갖게 만들었고, 대학에서 출현한 대통령학은 우리 정치의 개선 노력을 학문적 지평으로 확장 심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공정한 비판과 여과와 심판의 기능을 수행해온 시민단체들(부분적으로 분열정치의 일부가 되어 버린 시민단체들)과 달리, 한국정치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전제시를 담당할 대통령학은 행방을 찾기 힘들 정도로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대통령학은 모든 정치적 권력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정치를 고려할 때 분열정치의 낭비와 난맥을 극복하고, 정치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지고, 연구가 활성화 되어어야 할 학문이다.
다름 아닌, 최평길 교수는 1997년에 발표한 <청와대가 잘되야 나라가 산다>(박영사, 1997)에서, 함성득 교수는 1999년에 발표한 <대통령학>(나남, 1999)에서, 그리고 채수명 교수 역시 2002년에 발표한 <한국대통령학: 대권 시나리오>(이유, 2002)를 통해 대통령의 품격과 자질뿐만 아니라 참모조직의 구조와 기능을 과거와 현재의 시각과 미래의 비전에 비추어 논의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극단적 진영화, 윤리적 감수성의 부재, 행정부와 입법부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특정 정치지도자의 영웅화 또는 우상화를 공공연화하고 있는 정치현실이 말해주듯, 한국정치는 대통령학의 연구성과를 외면했다.
분열정치를 화합의 정치로 복원할 학문적 역할을 더욱더 빈곤화시키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접속이 가능한 거대 미디어에서부터 유튜브에 이르기까지의 대중적 정치뉴스와 토론이다. 스마트폰 98%의 보급률 자랑하는 디지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거대 미디어와 소규모의 유튜브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이 정치뉴스와 토론을 쉽게 접속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치적 시각에 따라 마음대로 시청할 수 있는 이 같은 미디어들을 통해 정당의 대변자들과 방송패널들의 공격용 언어와 방어용 언어를 여과 없이 흡수하며, 선택적 정치학습을 하고, 그 부분적 결과를 의식화한다. 문제는 이쯤에서 끝나지 않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치를 다양성 속의 조화를 추구하는 민주주의적 정치의식과 절차가 아닌, 진영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분노와 실망과 절망이란 비생산적 논리와 정서로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영철 시인/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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