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어떠한 위기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게 정상인데 녹록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메르스(MERS), 사스(SARS), 조류 인플루엔자(AI), 에볼라(Ebola), COVID-19 등의 高 전염성 질병이 비전통적 안보위협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오미크론 변이(Omicron variant)의 급속한 증가는 국제사회의 위기 인식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한⋅미⋅일 안보 공조와 협력체계는 원활하지 못한 데다 미⋅중 간 편 가르기는 계속되고 있으며, 중⋅러 군용기의 KADIZ 침범행위 반복, 한⋅일의 감정선은 깊어지면서 경제교류와 혐한(嫌韓) 정서도 완화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대남적화통일을 고집하는 껄끄러운 독립변수다. 김정은이 공고한 체제를 구축하며 각종 탄도 미사일, 잠수함, 사이버⋅특수작전부대 등 비대칭 전력을 강화하고 전술용 유도무기 개발과 시험 발사, 비핵화 협상 카드, 새로운 형태의 도발 책동을 통해 강도는 높이면서 쇼 윈도식 정상국가를 연출하고 있다. 이들의 비대칭 전력은 대규모 자연재해⋅사회적 재난 때 혼돈의 카오스(Chaos)를 조성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우리의 위기관리체계는 통합된 가동이 쉽지 않다. 여기에 정부(軍)의 정치⋅사회⋅군사적 위기관리 방식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며 불안감과 우려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한국은 1963년 미국에서 벤치마킹한 NSC를 대통령 직속의 자문기구로 설치했으나, 상식적인 판단이나 대처는 보기 어렵다. 역대 정부의 대처 방식을 살펴봐도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확증 편향적(confirmation bias) 인식과 진영논리에 따랐을 뿐, 국가의 존립과 국익을 위한 냉철한 판단엔 소홀했다. 혹자(或者)는 1978년 구축된 한⋅미 연합방위체제와 연합사령관이 전작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드라마 대사처럼 “그건 아니라고 봐!”다. 

지정학적 특성에 따라 전통적 안보위협에 대비해왔기에 ‘오컴의 면도날’이 익숙할 법한데, 모호한 화법(話法)만 난무한다. 어떠한 사태에도 ‘대북 경고’나 ‘예의주시’한다는 발표 수준과 상대를 일방적으로 이해하려는 행위가 의구심과 불신을 자초(自招)한다. 정권마다 다른 안보 인식과 의미가 떨어지는 ‘전략적 모호성’에 집착하는 데서 나타난 현상이다. 따라서 남⋅북⋅미 정상회담과 평화는 추진되어야겠지만 어떠한 위기나 돌발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는 위기관리기구를 구축하여야 한다. 핵심 키-워드는 위기사태 전반을 관리 및 통할(統轄)할 수 있는 ‘기준법’과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연계하는 ‘일원화된 조직 구조’다. 

현재 특별시와 광역시⋅도의 재난과 위기관리 업무는 이원화되어 있다. 일반 시⋅군은 통합방위와 방위지원본부, 민방위 업무로 분리되어 있으며, 담당자는 현행 업무 처리에 급급한 현실이기에 애초부터 유기적인 협력과 정보 공유(共有)가 불가능한 구조다. 더욱이 ‘자칭 전문가’는 많은 데 정작 필요한 ‘찐 전문가’를 찾기는 어렵다. 여기에 중앙 행정부처는 위기관리와 비상대비, 통합방위, 민방위 관련 영역을 과도하게 슬림화하였고, 지자체는 과도하게 분산되어 있다. 더 큰 문제는 위기(Crisis)란 생물은 항시 눈에 보이지 않기에 관련 기능이 소홀하기 쉽고, 훈련도 사전에 짜인 각본과 행정적인 처리 위주로 진행하기에 ‘자칭 전문가’들이 개선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미국이 전통⋅비전통적 안보위협에 대응하는 3대 중심축(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9⋅11테러 이전까지는 전통적 안보위협에 대비하였지만, 사태 이후 팽개쳐진 국가적 자존심을 신속하게 수습하고, 체계를 전환하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국외의 전통적 안보위기를 총괄하고, ‘국토안보부(DHS)’를 신설하여 본토 내부의 비전통적 안보위협을,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국토안보부의 예하 기관이지만, 예방-대비-대응-복구 활동에 독자적 권한을 보장하는 등 유연⋅탄력적인 위기관리와 대응체계를 완성하였다.

한국도 외국에 없는 괜찮은 법이 있다. 2009년 전시(戰時)로 범위가 확대된 <통합방위법>이다. 현실적  여건과 영역을 판단 시 재난⋅위기관리의 기준법으로 채택하면, 투자 시간과 노력의 절약이 가능하다. 중앙정부에서 최하급 행정단위인 읍⋅면⋅동과 하급 직장까지 연계하고 있거니와 협업체계도 어느 정도는 숙달되어있다. 이를 부분적으로 개선한다면, 국가방위 6대 요소를 동원⋅통합, 지원할 수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최소한의 조직 구조와 편성체계를 보강하면, 통합된 위기관리 체계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국가(軍) 조직이 위기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는 집단사고나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특정 집단(개인)이 전횡(專橫)하지 않아야 하며, 통합(unity of effort)과 협력(collaboration)을 전제하여야 한다. 뷰카(VUCA)의 환경과 현실적 리스크가 확실한 가운데 살아남으려면, 내부 체계와 힘을 결속하여 유연⋅탄력적인 자세, 행동을 반복적으로 숙달할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편향된 진영논리나 선전(Propaganda)도 아닌 선동(Agitation)⋅땜질 처방으로 위기를 해결하기는 힘들다.

2014년 美 토네이도 참사 때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가 한 말이 떠오른다. “저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최종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실패한 책임도 제게 있습니다(I have a solemn responsibility to protect our nation and our people. And when the system fails, it is my responsibility).” 내 앞의 나무나 열매에만 ‘멍’때리기보다 숲 전체를 보려는 노력이라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