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흑자 1000억 달러 돌파 눈앞…트럼프 통상 압박에 정부 부담

입력 : 26.10.18 22:33|정영훈 |댓글 0
1~9월 847억 달러, 역대 최대
트럼프, 알래스카 LNG 압박


올해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에 따른 반도체와 전력기기 수출 호조가 전체 흑자 규모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미국의 통상 압박이 다시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8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847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미 종전 연간 최대 흑자였던 2024년의 556억 달러를 3분기 만에 291억 달러 웃돈 수준이다. 연말까지 1000억 달러를 넘어서려면 남은 3개월 동안 153억 달러의 흑자를 추가로 기록해야 한다. 월평균으로는 51억 달러 수준으로, 올해 1~9월 월평균 흑자가 약 94억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달성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대미 무역흑자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는 비교적 완만한 흐름을 보였다. 2017년 179억 달러에서 2018년 139억 달러, 2019년 114억 달러, 2020년 166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증가세가 본격화돼 2021년 227억 달러, 2022년 280억 달러, 2023년 444억 달러로 확대됐고 2024년에는 556억 달러까지 늘었다. 지난해에는 495억 달러로 다소 감소했지만 올해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면서 다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가 한국산 반도체와 전력기기 수요를 끌어올린 것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달 대미 수출액은 243억3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37.0% 급증했으며, 지난달 1~25일 기준 대미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67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자동차 등 일부 전통적인 주력 수출품은 상대적으로 부진해 대미 무역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1~9월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847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연간 흑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그래픽=정호석
 
  
문제는 급격히 늘어난 무역흑자가 미국의 추가 통상 압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대미 무역적자 축소를 주요 통상정책으로 내세우며 한국에 대규모 대미 투자를 요구해 왔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해 4월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예고했다. 이후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면서 관세율은 15%로 낮아졌고, 자동차·부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도 지난해 11월 1일자로 소급해 25%에서 15%로 인하됐다.

한미 양국은 이달 1일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가운데 조선업에 배정된 1500억 달러를 제외한 2000억 달러 규모의 전략투자 계획도 구체화했다. 첫 사업으로 미국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확정했고, 두 번째 사업으로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남은 핵심 쟁점은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이다. 양국 공동 팩트시트에는 사업 검토에 착수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한국의 투자를 사실상 확정된 것처럼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사업의 경제성과 상업적 타당성을 따져야 하지만 미국의 투자 요구를 쉽게 거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부는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상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에만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측은 사업이 추진될 경우 한국 기업의 기자재 공급과 경제성 있는 장기 LNG 구매계약, 한국의 알래스카 LNG 우선 접근권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을 문제 삼아 자동차 관세를 25%로 다시 올릴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통상 수단을 활용한 압박을 이어왔다.

일본과의 비교도 한국 정부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2000억 달러 많은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으며, 올해 상반기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전년 동기 대비 23.4% 감소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확대를 단순히 미국의 무역적자를 키우는 요인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최근 흑자 증가는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전력기기 수요 증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산업별 무역구조와 미국 내 수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미 흑자 확대가 곧바로 추가 관세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수지를 통상 협상의 주요 근거로 활용해온 만큼 정부의 대응 논리 마련은 불가피하다. 이에 미국의 AI 투자 확대가 한국산 반도체와 전력 관련 제품 수요를 끌어올렸다는 점을 적극 설명하는 동시에, 현재 추진 중인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통상 협상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영훈 기자 banques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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