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한민국(이하 한국)의 ‘자체 핵무장’ 여론 조사 결과는 긍정 응답이 ±70%였으며, 국내외적으로도 논의가 활발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가 정치·외교·안보·경제·사회 전반을 수렁에 빠뜨렸다.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시선은 냉랭해졌고,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관련 논의도 주춤거린다.
이러할 때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직위자들이 이전에 주장하던 ‘한반도 전술핵무기 재배치’가 부상(浮上)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의 짐 리시·로저 위커 상원의원이 외교·군사위원장을 맡으며, 인-태 지역 핵 공유 등의 논의도 활발해질 거란 기대감이 크다.
미국은 지금까지 “북한이 한국을 핵무기로 공격하면, 즉각·압도·결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확장억제’와 ‘핵협의그룹(NCG)’ 이외에 북핵 공격에 직접 대응하는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1960년대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미-소(러)-영의 핵무기 개발에 충격받아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면, 강대국일 수도, 주권국일 수도 없다”며,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미·소가 강하게 압박했다.
존 F. 케네디 美 대통령은 “우리가 소련의 핵 공격에서 프랑스를 지켜줄 것인데 왜! 핵무장을 하는지”를 물었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反問)하자 침묵에 빠졌다.
엘브리지 콜비 美 국방차관은 “(중략)북한은 미국에 심각한 위협이 아니기에 북한 핵에 미국의 도시 여러 개를 잃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 “미국의 ‘비확산 정책’은 실패했고, ‘확장억제’는 허구(fiction)와 가깝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하지 않는 대안이 좋지만, 모든 안(案)을 테이블에 올릴 필요는 있다”고 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확장억제’를 비판 및 ‘자체 핵무장’을 이해한다는 의미일 뿐 적극적인 지지 표현이 아니다. 미국 도시를 희생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도 벗어나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반도에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를 구상한다면, 예산 일부를 부담해서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술핵무기 재배치 예산 부담을 떠안는 게 북핵 대응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인지? 냉철한 고민이 필요하다.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한반도에 전술핵무기 배치(NSC5501, 1958)와 철수(1991)를 결정할 당시 미국의 국제정세 판단 시 한반도의 전략적 순위는 어디쯤이었는지, 미국의 과거·현재의 국가전략 순위를 되살펴야 한다. 유념할 사실이 미국의 국가전략 순위는 항시 일본이 우선이고, 그다음 순서가 한국의 지정학적 측면이었다. 주한미군 2개 사단 잔류, 주일(駐日) 美 지상군 철수, UN군 사령부의 한반도 이전 등은 일본의 반미(反美) 운동이 격해지면서 일본에 핵무기 반입이 어려워지자 급하게 대일 안보정책을 수정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국가전략에 맞춰 2022년 3대 안보전략 문서를 개정하고, 자위대를 재편하며, 군사 강국의 면모를 늘렸다.
이러한 되새김은 ‘한반도에 전술핵무기 재배치’에 관한 대미(對美) 협상 모멘텀을 찾는 데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일본의 1950~1960년대 반미(反美) 운동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극렬했다. △1945년 미국은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항복을 강요당했다. △1954년 3월 1일 미국이 마셜군도 인근에서 최초의 수소폭탄을 실험하며, 참치 조업 어선이 피폭됐다. 그러나 미국은 인정하지 않았고, 사망자 보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반미(反美) 여론이 들끓었다. △1956년 오키나와에 미군기지를 건설할 때 ‘토지몰수정책’을 강제로 집행하며 더 극렬해졌다.
미국은 일본의 극렬한 반미 운동으로 전술핵무기를 반입(배치)하기가 불가능해지자 대안이 필요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된 지 5년이 지난 1958년 1월 주한미군이 갑작스레 “북한을 방비하고, 한국 안보를 위해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술핵무기 배치 목적이 대소(對蘇)·동아시아에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지 한반도 안정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한편, 북한은 1985년부터 영변에 50MW 원자로를 건설하였다. 미국은 1989년 5월 “북핵 개발을 저지해달라”고 소련에 요청했고, 7월 딕 체니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모든 핵시설은 국제원자력기구(이하 IAEA)의 사찰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1991년 7월 16일 북한은 IAEA와 가(假) 조인을 체결하고도 NPT를 탈퇴(1993)하며, 제1차 북핵 위기를 초래했다. 1991년 조지 H. W. 부시 美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한반도 전술핵무기 철수’는 북핵 위기가 해소돼서가 아니었다. 동·서독 통일, 조지아공화국·발트 3국이 소련을 탈퇴하며, 더는 핵무기가 필요 없게 되어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한반도에 전술핵무기를 배치·철수한 이면(裏面)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SIS)는 美 상원의 공화당원들과 트럼프 1기 행정부 관리들이 한국에 ‘전술핵무기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을 허용하는 방안을 토론했다고 밝혔다. 부활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부족한 국방 예산을 벌충하는 ‘상쇄전략’으로 동맹·우방국의 비용 분담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와 고관세, ‘팽창주의’를 내세우며, 우리에겐 방위비 분담과 더불어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하려면, 개선·관리 비용을 더 내라는 청구서 도착이 눈앞이다. 국제사회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하고, 혼탁한 정국에 전략적 선택의 폭이 제한되지만, 어떻게든 치밀한 협상·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정치·사회권 일부가 북핵·미사일 대비보다 정쟁에 빠진 작금에도 북한(전쟁)은 우리의 혼란한 정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성진 국방전문 기자 btnk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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