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이승만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의 정치·외교적 역량

입력 : 25.02.25 10:58|김성진 |댓글 0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Treaty of Portsmouth)을 체결했다. 이들은 강화회담에 앞서 영·미와 타협해 대한민국(이하 한국)을 강제로 점령 및 통치하고자 했다. 필리핀을 욕심내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美 대통령은 7월 윌리엄 H. 태프트 육군장관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지시한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정당화해주고, 미국은 일본의 한국 통치가 러-일 전쟁의 논리적 귀결로서 극동 평화에 공헌할 것”이라며, 서로 win-win 하기 위해서다. 이로써 ‘give & take’의 묘수가 완성되었다. 영국과는 ‘제2차 영·일 동맹’을 체결하며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1924년 비밀이 공개되기 이전까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김일성의 무력 침공을 당한 한국은 백척간두(百尺竿頭) 위기에 내몰렸다. 이때 선뜻 손을 내민 인물이 美 민주당 출신의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국가전략상 우선순위가 아니었지만, 그의 결단으로 지옥의 문턱에서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1952년 공화당 출신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정치적 타협으로 전쟁을 종결시키고자 휴전을 강권하면서 한국은 다시금 위기에 몰렸다.

최근 국제 미아(迷兒) 신세인 우크라이나가 6·25 전쟁 당시 한국의 처지와 유사하다. 속수무책이던 한국이 트루먼의 결단으로 기사회생하였지만, 루스벨트에 휴전 협상을 강제당했고, 당사국임에도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됐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도 2022년 러시아에 무력 침공을 당한 이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원으로 잘 버텨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피해자(우크라이나)에 종전(終戰)을 강압하면서도 완전한 평화는 보장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를 ‘America First’만 집착하는 탐욕스러운 수전노라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늑대(강대국)가 정의롭고 선한 양의 탈을 벗었다는 측면에서 상대가 헷갈리지 않게 하는 직선적이거나, 솔직한 성격이라고 볼 수 있어서다. 인류사와 국제관계에선 ‘정글의 법칙’이 존재하기에 국익을 추구하려면, 강대·약소국을 불문하고 다른 국가가 조심스러워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외교·경제·군사력이 월등하거나, 기술(tech)·리더십 중에서 무엇 하나는 다른 국가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2월 18일 미·러 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종전(終戰) 협상을 시작했다. 주변국이 어떻게 반응하든 정상회담으로 연계하는 흐름이지만, 당사국(우크라이나)의 의사는 배제됐다. 트럼프는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된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차단’을 압박하며, 희토류 등 희소 광물의 50% 지분을 챙기겠다는 독촉장을 연일 보내고 있다. 문득 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두 늑대가 마주 앉아서 각자가 원하는 식민지를 포크와 나이프로 나눠 먹는 풍자 그림이 떠오른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핵 보호 없이도 스스로 방어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위기·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30살의 이승만은 1905년 8월 4일 뉴욕주 사가모어 힐(Sagamore Hill)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면담하였다. 이때의 기억은 냉혹한 국제정치의 이면(裏面) 즉, ‘결정적 순간에 배신하는 강대국(미국)’을 체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루스벨트는 이승만에게 “미국 정부에 공식 계통으로 제출해 달라”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었다. 그러나 이미 1주일 전에 체결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한반도의 지배권은 일본 측에 넘어간 뒤였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그는 허탈감과 충격에 빠지면서 “선한 강대국이란 없다. 그들을 선(善)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어떠한 힘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굳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6·25전쟁 당시 미-북·중 간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한국은 당사국임에도 협상에서 배제됐다. 항의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후 전쟁포로 석방 문제로 3국 간 의견이 갈리자 25,000여 명의 반공 포로를 전격 석방하며 주도권을 잡았고, 미-북·중이 작성한 휴전 협정문서엔 서명하는 자체를 거부했다. 이후에도 이승만은 특유의 고집으로 고립주의적 성향이 짙은 미국을 몰아붙였다. 결국, 미국의 외교사(外交史)에 유례가 없던 양자 군사조약 즉,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한·미동맹)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고, 국제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동맹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은 민주·산업·정보화에 성공하였고, 세계 6위의 선진국으로 발전했다.

6·25전쟁 당시와 유사한 여건이면서 이승만과도 오버-랩 되는 최근의 인물이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다. 그는 트럼프의 ‘강요된 평화’ 압박에 몰려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승패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적인 대치 상태가 정치적 측면으로 굳어지면, 불완전한 평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에서 자강(自强)하지 않고는 존립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50년 전 남베트남의 패망이 그랬고, 우크라이나의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젤렌스키가 1950년대 이승만과 같은 외교·정치적 역량을 발휘하는 정도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다. 희망 사항은 그가 한국의 이승만과 같은 역량(능력)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최근 한국도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정국(政局)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국민의 현명한 지혜·전략으로 냉전 시대 늑대들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던 과거의 위기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김성진 국방전문 기자 btnk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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