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나자 유럽이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지난 2일 영국 런던에 모인 EU·NATO 회원국 정상 15명이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유럽 정상들의 긴박한 행보는 냉전 이후 대립해오던 미·러가 트럼프의 대(對)러 피벗(pivot·중심축 전환)과 러-우 전쟁 휴전협상 진행 및 광물협정을 체결하고자 열린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나면서다.
3일(현지 시간) 美 백악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중단하겠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해결책에 기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원을 잠시 중지하고 이를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우크라이나도 그 목표에 헌신하며,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美 대통령이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방국(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무례하다”고 몰아세우며, 백악관에서 쫓아내듯 내보내자 러시아의 위협에 더 직접 노출된 유럽의 움직임은 빨라졌고, 더 구체화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 80여 년간 잘 작동되던 미국과의 안보·경제동맹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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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처지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대표국인 미국이 권위주의 독재국가(러시아)에 대한 피벗과 그들이 북한의 대규모 파병·포탄(무기) 지원 등으로 밀착된 관계는 한반도의 안보정세에 지대한 변수로 작동할 수 있기에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최근 미국이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비롯해 여러 창구를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정책’을 공표했지만, 트럼프의 행보를 고려할 때 의구심을 지우기는 쉽지 않다. 재집권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목표지향적 사고’가 강력하고, 한번 결정한 생각은 잘 바꾸지 않으며, 즉흥적 발언이 많고, 수시로 말이 바뀌어서다.
워싱턴포스트(WP)도 “미국이 러시아로 다가가는 작금의 변화가 러시아에서 바라는 대로 미군을 동유럽에서 철수하게 될 경우, 유럽이 러시아의 위협에 더 노출된다는 최악의 악몽을 일깨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를 감싸고 도는 이면(裏面)엔 패권경쟁을 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압박과 중·러 간 밀착 관계를 느슨하게 유도하고, 러시아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에 대한 셈법을 마친 결과로 읽힌다.
출범한 지 2개월여가 지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치·경제·외교 방식이 ‘철저한 힘의 논리’에 기반함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가 러-우 휴전협상에 굴복할 경우, 다음 표적은 국가전략 1순위인 인도-태평양 전략 진행이며, 한반도가 제1의 표적일 수 있다.
이때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와는 변화된 대진표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엔 중국과 북한이 밀착됐지만, 지난해 6월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시작으로 러시아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 및 포탄·무기 지원 등으로 더욱 밀착된 북·러 관계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최근 들어 김정은의 가장 든든한 뒷배가 된 러시아는 지난해 김정은의 요구로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을 거부했고, 결과적으로 대북제재 감시기능을 없애버렸다.
이러한 주변 요인은 미·북 간 북핵 협상이 진행될 때 ‘미국 우선주의·팽창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국은 배제한 채 미(트럼프)-북(김정은)-러(푸틴)의 3자 정상회담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더 커지게 한다.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젤렌스키에 “당신은 카드가 없다(You don’t have the cards)”고 면박하는 장면은 힘없는 국가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구소련의 해체로 독립국이 됐지만, 이후 30여 년간 강대국의 안보 약속만 믿다가 ‘정글의 법칙(힘의 질서)’에 무너졌다. 뼈아픈 패착은 유럽 최대 규모의 원전 시설, 핵무기 제조창을 가지고도 1994년 12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쓰면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인제 와서 땅을 치도 후회해도 현실을 바꾸기는 불가능하다. 문득 1637년 삼전도에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림)의 굴욕으로 청나라에 항복하던 조선 인조의 모습이 떠오른다.
트럼프는 러·우 전쟁 문제가 해결되면, 최대의 적인 중국을 견제하고자 인-태 전략 수행에 전념할 것이다. 이때 지정학·전략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데 가치가 있는 한국이 우크라이나보다 대미 협상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미국에 그러한 가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두뇌인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이 2021년 출간한 저서(2021) ‘거부전략(The Strategy of Denial)’을 살펴보면, “아시아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 패권적 연합’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여기서 대중(對中) 견제의 핵심 우호국으로 일본·호주·인도를 적시했지만, 한국은 ‘담장 위에 서 있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불안정한 정국이 이어지고 있는 작금의 한국에서 지정학·전략적 가치를 확실히 제시하지 못한 채 지체할 경우, 트럼프의 ‘아시아 새판 짜기’에서 배제될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김성진 국방전문 기자 btnk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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