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도널드 트럼프 美 대통령(이하 트럼프)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하 젤렌스키)의 워싱턴 정상회담·광물협정 체결이 파행으로 끝났다. 트럼프는 자신의 종전 구상이 꼬이자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평화에 대한 의지가 보일 때까지 운송 중인 무기를 포함해 모든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그의 감정적 분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버티던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를 즉각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2월 이전까지만 해도 러시아·북한 연합군(이하 러시아군)이 전선에 도달하기 이전에 이동 정보를 파악하였다. 이들은 러시아군의 공격 지점과 이동 경로에 지뢰·박격포·드론을 준비하여 킬-박스(Kill-Box) 내부로 들어선 러시아군을 번번이 격퇴하였다. 그러나 3월 초 러시아군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붕괴되었다.
‘자국 우선주의·팽창주의’에 몰입된 트럼프는 정상회담이 파행되자마자 즉각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군사 지원과 정보 제공을 중지시켰다.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의 지원이 끊겨도 몇 달은 전쟁을 할 수 있다”며, “군수품의 40% 이상이 우리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블러핑을 시도하면서 트럼프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이들은 곧바로 지옥 불에 빠졌다.
미국은 러-우 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일론 머스크의 저궤도 위성을 비롯해 각종 자산과 감청 시스템 등을 지원해왔다. 감시·정찰·정보 자산을 인접한 유럽 지역으로 전개하여 러시아군의 동태를 실시간대로 파악했다. 정찰기(RC-135) 등은 러시아군의 무선통신을 감청하여 작전 계획과 부대 이동을 식별해냈고, 조기경보위성·경보기 등은 탄도미사일·장거리 자폭용 드론·폭격기 등의 이동을 포착해냈다. 그간 우크라이나군이 전장(battle-field)에서 우세를 유지하는 덴 미국의 각종 지원과 정보수단 제공이 결정적이었다. 즉, 컴퓨터게임에서 ‘맵핵(map hack·지도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보이게 하는 해킹 프로그램)’ 역할을 하였다.
우크라이나의 현재는 ‘강대국(힘)이 우선하는 국제사회의 민낯=정글의 법칙’의 무서움을 새삼 느끼게 한다.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세운 트럼프는 경쟁·동맹·우방국을 구분할 생각이 없다. 그는 오직 미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생각할 뿐으로 여기에 반하는 국가는 모두 적(enemy)으로 간주한다. 그의 인식에서 경제적 이익과 배치(背馳)되면, 동맹·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고관세 폭탄과 강압·무력적 위협을 서슴없이 가한다.
최근 유럽의 동맹·우방국(이하 EU)들이 “미국을 믿을 수 없기에 미국산 무기 구매는 중단해야 하고, 자체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안보·방산 자강론’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한계를 도외시한 채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판단한 확증편향의 결과다. EU가 아무리 ‘유럽 재무장계획(ReArm Europe)’ 의지를 표명하고, 자강(自彊) 계획을 내세워도 대미(對美) 안보의존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하다.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EU 회원국이 조성한 8,000억 유로(한화 약 1,270조 원)가 집행되어도 미국의 정보 자산·군사적 역량을 대체할 장비·예산을 확보하기엔 절대 부족한 규모다. 둘째, EU 회원국들이 지출하는 군사비는 일회성 예산이다. 즉,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의 정보 수집·분석 능력을 대체할 장비 구축 및 인프라 확보에 필요한 예산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를 극복하려면, 막대한 규모의 예산이 계속 투자돼야 하고, 군사 역량을 높이기 위한 무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EU는 다수의 국가 협의체로서 지정학·경제·안보 측면에서 각기 이해관계가 다르기에 안보 분야에만 노력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EU보다 경제력과 국방예산 규모가 적은 대한민국(이하 한국)은 어떠한 현실일까? 일부 전문가는 독자적인 감시·정찰·정보 자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하면, “굳건한 한·미 동맹이 있고, 연합자산을 사용할 수 있기에 독자 수단을 확보하기보다 주한미군 자산을 협조하면 된다”고 한다. 물론 독자적인 감시·정찰 자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추진이 지체되고 있다. 최근 군단급 무인정찰기(헤론) 3대가 모두 작동 불능이 됐고, 글로벌 호크(RQ-4, 작전반경 3,000km) 4대는 정상 기능을 발휘하기가 제한된다. 조기에 정밀한 대북 감시활동에 관한 노력의 집중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의 오늘은 우리와 오버-랩되는 지점이 많다. 우수한 서방제(西方製)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의 정예부대가 美 정보·감시·정찰 수단의 지원이 끊기자마자 붕괴되었다. EU가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여 첨단 무기를 보유한다고 해도 미국이 보유한 능력(역량)을 대체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우리의 자성과 더불어 독자적 정보·감시·정찰 자산 확보를 위한 예산투자, 끈질긴 노력이 절실한 요즈음이다.
최근 트럼프는 자신의 구상에 승복하지 않거나,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으면, 곧바로 약탈적 협정과 강압적 수단을 이용해 상대가 누구인지 가리지 않고, 굴복시키고자 끝까지 몰아붙인다. 그의 독선·독단적인 우선주의 성향은 우크라이나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이제 한반도의 차례다.
고관세 압박과 주한미군의 방위비 부담 분담금 증액,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에도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그러나 맞춤식 전략을 내기가 버거운 현실이다. 협상의 기술을 발휘할 천부적인 능력(역량)의 결집이 절실한 때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天崩牛出)”
김성진 국방전문 기자 btnk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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