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이하 트럼프)는 곧바로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지구촌 곳곳의 안보 위협 대응은 각자도생의 형국이 됐고, 국가·진영 간 군비 증강 경쟁은 일상이 되었다.
트럼프가 재출범하면서 강력한 결속을 과시하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탈퇴하겠다고까지 위협하자 국방비 투자에 소홀하던 유럽연합(이하 EU)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EU는 2022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침공한 이후 트럼프가 보인 편향·일방적 해법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결국, ‘자주국방’에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지난 3월 EU는 2030년까지 방위력을 강화하는 ‘유럽 재무장 계획·대비태세 2030(ReArm Europe Plan/Readiness 2030)’ 정책을 발표했다. △자체 방산 역량을 강화하고, △유럽산 무기 구매 비중은 50%로 확대하며, △방위산업을 재개해 미국산 무기 의존도를 줄이고자 8000억 유로(약 1300조원)를 조성했다. 6500억 유로(약 1057조원)는 27개 회원국이 개별적으로 마련하며, 1500억 유로(약 243조 원)는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에서 무기를 구매할 때 대출해줄 계획이다. △‘유럽산 구매(Buy European)’엔 완제품 비용의 65%에 해당하는 부품은 EU·우크라이나산이어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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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Self-reliant defense, 자주적 방위역량)’은 ‘국가방위태세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거나,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이다.
최근의 ‘자주국방’ 움직임은 트럼프가 EU 회원국에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지 않으면, NATO의 집단방위 원칙(회원국 한 곳이 공격받을 경우,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 대응)을 지키지 않을 거란 위협에 따른 결과물이다.
주목할 지점은 EU와 NATO의 ‘자주국방’에 대한 인식 및 개념이 다르다는 점이다.
EU의 ‘자주국방’은 대서양 동맹이 약화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유럽 회원국 전체의 안보역량을 강화’하고자 한다. 이는 트럼프로부터 GDP의 2%를 국방비로 사용해야 한다고 압박받으며, 시작되었다.
NATO의 ‘자주국방’은 ‘회원국의 독자적인 국방력·안보역량을 강화’하는 데 있다.
최근 대한민국(이하 한국)에서 불거진 ‘독자적인 자주국방’이란 명제(命題)는 진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두 차례 ‘자주국방’ 의지가 공표됐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하 박정희)은 리처드 닉슨 美 대통령이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국가와 자유 진영 국가 간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의 책임은 당사국에 국한된다”는 독트린을 발표하며, 주한미군의 철수를 시사(時事)했다. 당시 한국은 북한의 무력 침공에 대응할 전력(戰力)이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곧바로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과 독자 생존’을 목표로 한 자주국방을 추진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에서 ‘자주국방’을 강조했다. 당시는 북한의 무력 침공에 대응할 군사력이 확보된 시기였기에 박정희가 추진했던 ‘독자 생존’이 아닌 ‘자주성(independency)’이 핵심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출범하면서 국제사회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은 현실이 됐다. 스웨덴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반(反)러시아 성향의 스웨덴은 오랜 기간 자주국방을 추진해왔으며, 독자적 군사력도 갖췄다. 그러나 2022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침공하면서 자주국방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2023년 인접한 핀란드가, 지난해 2월엔 스웨덴이 NATO에 가입을 완료했다.
2017년 스웨덴은 여성도 징집대상으로 하는 ‘징병제’를 재도입했고, 다른 회원국들과 달리 전(全) 국민이 참여하는 ‘총력 방어(Total Defense) 체제’를 독려하고 있다. 2024년 여론조사에선 대군(對軍) 신뢰도가 81%였다.
스웨덴은 인구(약 1천여만 명) 특성상 병력 중심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무기체계를 고집했으나, 러-우 전쟁에서 얻은 실전 데이터에 태도를 바꿨다. 특히 NATO 등 동맹국들과 협력을 강화하며, 정보·지능전을 발전시키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급변하는 안보 환경과 피·아 구분이 모호한 국제사회에서 ‘자주국방’에 성공하려면, 네 가지 전제는 필요하지 않나 싶다.
가장 먼저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소통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보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 말만 진실이라고 느끼는 현상, 소수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증폭)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방정책·제도는 단기적인 접근보다 조직·구조 측면부터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軍이 왜! 존재하는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도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모멘텀(momentum)을 생성할 수 있다. 고착된 사고방식의 대증적(對症的) 처방만으로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첨단 군사기술의 독자적 확보라는 압박과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는 정서적 무게감을 극복해야 한다. 첨단기술(인공지능·AI, 무인기·drone, 고출력 레이저(HEL)·자율무기)과 무기체계 등의 독자 개발이 쉽지 않은 국제관계적 특성 때문이다. 부품·소재,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인공지능 데이터 등 모든 분야를 독자적으로 진행할 경우, 불필요한 노력으로 완성도가 지체될 수밖에 없기에 글로벌 네트워크와 협력할 수밖에 없다. 독자 개발이 가능해도 소요되는 비용·실전 배치 시간·기술 유출 또는 저작권 문제 등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동맹 관계는 일방적 관점으로 조석변개(朝夕變改)할 수 없는 민감한 문제다. 더군다나 여느 국가를 불문하고 외교·안보 측면의 균형 유지는 상당한 고차원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외국군이 불필요’하다는 편향적 접근 인식은 국익 추구 및 동맹과의 관계에 더한 긴장을 불러올 수 있다. 정서적 접근보다 이성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자주적인 방위역량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발전과 국가 이익을 추구하려면,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필요한 영역(기능)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내 편으로 만드는 기법(skill) 또한 중요하다. 독자적인 방어 능력을 갖추는 한편 NATO 가입을 선택한 스웨덴의 상황, 국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한 번쯤 돌아볼 때다.
김성진 국방전문 기자 btnk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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