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美 행정부(이하 트럼프)의 국가방위전략(NDS·National Defense Strategy) 발표가 임박했지만, ‘통상(관세)과 韓·美 동맹 현대화’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대한민국(이하 한국)을 배제한 ‘New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이 그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가방위전략(NDS)’은 美 전쟁부(=국방부)가 4년 주기로 의회에 제출하는 최상위 국방전략 문서다. 복수의 워싱턴 안보관계자는 ‘America First’를 구체화하면서 △美 본토와 서반구 방위를 최우선에 두고 △대중(對中) 억제를 위한 인-태 전략 강화 △동맹국의 방위비 부담을 확대할 거라고 강조한다.
‘애치슨 라인’은 1950년 1월 12일 딘 G. 애치슨 美 국무장관이 발표한 ‘극동방위선’이다. 알류산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되, 한반도와 대만을 제외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을 포기했다는 인식을 초래했고, 김일성(北)-이오시프 스탈린(이하 스탈린, 구소련)-마오쩌둥(中)에 의한 6·25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미국의 대한(對韓) 원조가 계속되자 이들이 남침공격을 결심하는 데 상당한 혼란을 겪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1990년대 초부터 구소련에서 해제한 기밀문서를 살펴보면, ‘애치슨 라인’이 김일성의 남침공격과 스탈린이 ‘한반도 공산화’를 승인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내용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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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공격을 승인해준 시기는 주한미군 철수 및 남북 간 군사력 격차가 커지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1949년 3월 당시 김일성은 주한미군을 최대 2만 명으로, 9월엔 美 군사고문단 500여 명만이 잔류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스탈린과 김일성은 미군이 한국을 지원하려고 해도 지상군 병력을 집결하는 데 수개월이 지체될 것으로 판단해 남침 시기가 결정됐다.
스탈린은 김일성이 재빠른 공세로 미군 참전을 지체시키고, 한반도의 공산화는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하고자 했다.
1950년 1월의 ‘애치슨 라인’ 발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현재와 유사하다.
첫째, ‘New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면, 한반도의 안정·평화에 혼란·불안감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함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하 김정은)이 원하는 게임체인저나,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6·25 전쟁 초기엔 심리적 측면에 도움이 됐겠지만, 당시도 북·중·러는 ‘한반도 내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만 집중했다.
다만, 우려스러운 지점은 ‘New 애치슨 라인’ 발표가 韓·美 동맹에 대한 불안과 정치적 혼란을 키우며, 대미(對美) 신뢰에 엄청난 불신을 가져올 것이다. 정부가 개선하고자 노력할수록 국민적 불만은 커지는 한편 대한(對韓) 투자·환율, 통상·안보 분야는 결정적 위기에 빠질 가능성 또한 커질 것이다.
여기에 김정은 등 권위주의 국가지도자들이 韓·美 동맹의 붕괴로 오판(誤判)할 수 있기에 아예 언급되지 않아야 한다. 설령 발표돼도 전략자산의 재배치·관련 예산 책정 등의 정책 시행엔 변화가 없어야 한다.
둘째, ‘주한미군 28500명=인계철선(tripwire)’이며, 강력한 대북(對北) 억제력이라는 믿음이다. ‘New 애치슨 라인’ 발표보다 더 큰 위기 요인은 우리 내부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난무하는 감성적 수사(修辭)와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의 망령’이다.
‘인계철선’은 ‘적이 공격을 멈추게 하거나, 유의미하게 늦출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는 소규모 전력’을 뜻한다. 지금의 주한미군은 美 증원군이 도착할 시간을 확보하기에 충분한 전력을 가졌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전환 및 일부를 축소하는 등 ‘동맹의 현대화(전략적 유연성 변화)’로 지금보다 더 소규모가 될 경우, 한반도의 안보 공백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미국의 핵우산을 작동할 거라는 확신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차제에 “인계철선(주한미군)이 강한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라는 막연한 믿음에서 벗어나 “‘주한미군 변동과 New 애치슨 라인’이 현실일 경우, 플랜 B·C는 가졌는지?” 살펴야 한다. 물론, 가장 좋은 결과는 미국 NDS에 ‘New 애치슨 라인’이 없고, 주한미군의 변동도 없어야 한다.
트럼프는 NATO와 ‘핵 공유’를 확언하지 않았다. 앨버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과 존 노 인-태 안보담당차관보 지명자,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등은 “미군은 영구적인 전방 배치와 유연한 순환 배치가 혼합돼야 한다”며, ‘전진 거점’이 아닌 ‘전진 기지(항공모함)’로 전환하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LA·워싱턴DC·시카고 등의 주요 도시에 주 방위군을 투입하고, 베네수엘라의 코앞 카리브해에선 마약 운반선을 공습했다. 우리는 미국의 갑작스런 조지아 근로자 구금 사태-캄보디아 범죄조직 피해 사태 등에 즉각 대응하지 못한 채 다소 외떨어진 조치들로 우려 섞인 반응이 늘고 있다.
해결의 핵심은 무엇인지, 최종상태는 어떠해야 하는지부터 짚어내는 게 우선이다. 주한미군의 존재 가치와 의미는 우리의 존립과 국익 추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장기적으론 자강(自强·자주국방)이 돼야 하지만, 현실 전쟁을 억제하려면, “주한미군이 철수해도 우리 군사력이 세계 5위”라는 감성에 젖어 실질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인구감소로 병역인구는 급감하고, 초·중급간부들의 軍 이탈 현상은 멈추지 않는 등의 복합적 현실도 잊지 않아야 한다. “외국군 없이 자주국방이 불가능하다는 게 굴종이다”라는 내용은 정치적 수사(rhetoric)에 그쳐야 한다.
미국의 ‘주한미군 유지’와 ‘동맹 현대화’가 급격한 변화가 목전(目前)인 상황에서 무분별한 감성적 언급은 주한미군 유지의 명분과 전략적 판단 및 가치를 훼손당할 수 있다. NDS에 담긴 대중(對中) 억제 수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준과 연계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두 차례나, 美 방위선에서 제외됐다.
첫째, 1905년 美-日 간 맺은 ‘가쓰라·태프드 밀약’에서다. 이후 일본은 한반도를 보호한다며, 침탈했다. 당시 미국은 욱일승천하는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일본의 독점적인 한반도 지배권을 인정했고, 필리핀에선 자신들의 우월적 지배권을 챙겼다.
둘째, 1950년 1월 딘 G. 애치슨 美 국무장관은 ‘애치슨 라인’을 발표하면서 한반도와 대만은 제외했다. 스탈린과 김일성, 마오쩌둥은 이 틈새에 남침공격을 노렸다.
美 NDS가 한국을 또다시 극동방위선에서 제외하면, 악몽이 반복될 수 있다.
정파(政派) 간 외교·안보 사안마다 충돌하면서도 의견이 통일되는 지점은 주한미군이 철수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보수 진영은 미국이 韓·美 동맹을 버리고 철수하지 않을 거로, 진보 진영은 주한미군은 점령군이기에 전략적 이익이 존재하는 한 절대 철수하지 않을 거라는 인식에서다.
트럼프는 종잡기 어려운 ‘고립적 현실주의자’다. 美 본토와 미주 대륙만 지키겠다며, 나머지는 해당 국가들이 알아서 책임지라고 한다. 미국의 현실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다음 전(全) 세계에 미군을 전진 배치하며, 막대한 군비(軍費)를 지출한 결과이기에 보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해양 방어선만 잘 지킨다면, ‘America First’를 추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남의 형편을 걱정해주던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다.
‘자주국방’을 하려면, 먼저 韓·美 동맹의 기치 아래 어떠한 명분으로든 전략적 가치를 만들어 주한미군을 유지하며, 자강(自强)부터 해야 한다. 세계 최강인 미국과 여느 국가도 나 홀로 ‘자주국방’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통상(경제)·안보 여건이 긍정적이지 못한 이때 국익을 위해서라도 인-태 전략에 동참하며,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는 two-track에 사활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김성진 국방전문 기자 btnk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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