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간 중 열린 韓·美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美 대통령(이하 트럼프)은 조선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외교당국 간 ‘조선협력협의체’ 신설에 합의했다. 이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리의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 잠함)에 사용할 연료공급 요청에 “한국은 미국 필라델피아(이하 필리) 조선소에서 핵 잠함을 건조할 것이다”며, “옛 미국 땅에서 우리(미국) 조선업은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이하 한국)가 핵 잠함 도입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해군이 보유한 재래식 디젤 잠수함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다양한 무기를 탑재할 수 있지만, 연료·산소 부족으로 작전 지속능력을 유지하기엔 한계가 있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1973년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됐지만, 미국의 강한 반발로 철회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1982년 전두환 정부는 연구용 천연우라늄을 보관했지만, 다음 해 플루토늄 추출 중지를 약속했다.
핵 잠함 사업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362 사업(2003년 6월 2일 시작한 날짜를 의미)’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2004년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지금의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우라늄 레이저 농축 실험(0.2g, 2000년 1~3월)을 한 사실이 미국에 노출돼 ‘362 사업’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韓·美 정상회담에서 다시 제안했지만, 미국이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제도적 장벽 또한 컸다. 이후 핵 잠함을 독자적으로 건조하려고 했으나, 미국의 저농축 우라늄 공급 거부로 또다시 접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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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핵 잠함보다 ‘한국형 3축 체계’의 구축과 韓·美·日 안보협력을 공고히 하는 데 집중했다.
최근 트럼프의 미국이 핵 잠함 추진을 거부하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우리가 핵 잠함을 보유할 경우, 일본·대만 등 동북아시아 전역에 핵 잠함 도미노의 확산을 우려하면서도 韓·美 원자력협정 개정이 가시권에 들어왔고, 핵 잠함은 필리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게 됐다.
韓·美 원자력협정은 미국의 동의하에 우라늄을 20% 미만으로만 농축하되, 핵연료 재처리와 군사적 이용은 불가능하다. 지난해까지 미국은 우리의 핵 잠함 추진에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앤서니 와이어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부차관보는 “미국은 한국과 美 해군의 핵 추진 기술을 공유할 의사가 없다”고 했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한국의 핵 잠함 도입론은 미국이 수용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일본 최초로 여성 총리가 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이하 다카이치)는 12개 분야 주요 정책 중 국방 부문에서 ‘차세대 추진력(핵 추진 방식의 우회적 표현)을 갖춘 VLS(SLBM을 수직으로 발사하는 장치) 탑재 잠수함 보유 정책’을 추진한다. 이미 이들은 2022년 12월 국가안보전략에 적의 미사일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명시했다.
지난 9월 아사히(朝日) 신문 보도에선 ‘방위성 전문가 그룹’이 “중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핵 잠함인 차세대 추진 시스템으로 잠수함 함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한 내용이 눈에 띈다.
‘방위성 전문가 그룹’은 2024년 2월 3대 전략 안보 문서(①국가안보전략(NSS) ②국방전략(NDS) ③방위력 정비계획(DBP))의 이행 현황을 검토하고, 미래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다.
일본은 1972년에 핵 잠함 기술을 확보했으나, 첫 시험 항해간 중성자·감마선 일부가 누출돼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중단했다. 일본 전직 고위 당국자는 “핵 잠함 건조 역량은 확보됐지만, 원자로 사용에 부담감이 컸다”고 밝혔다.
일본의 핵 잠함 보유 명분은 ‘전략적 억제력’이다. 인-태 전략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를 추진하고 있다.
자민당 등 보수 세력은 군사력이 한국·중국 등 주변국에 뒤처졌다며, 핵 잠함·장거리 미사일로 ‘전략적 동등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대 안보전략문서에선 안보 환경을 ‘전후(戰後) 이래 최악의 수준’으로 평가했다. 다카이치는 주변국과의 군사력에 ‘기본적 균형’을 맞추고자 2027년 GDP 2% 수준의 방위비 달성 목표를 2025년 내로 앞당기겠다고 한다.
그러나 핵 잠함 보유는 일본 헌법 제9조의 △전쟁 포기 △ 전력(戰力) 보유 금지 △교전권 부인(否認)에 정면으로 배치되며, 전수방위(専守防衛·수동적 방어에 입각한 국토 방어전략)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일본은 1967년 12월 11일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총리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비핵 3원칙(핵을 갖지도·만들지도·반입하지도 않는다)’을 공식화한 다음 핵 잠재력을 확보하는 영활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일본의 핵 잠함 프로젝트는 미국의 호의적인 태도를 끌어낼 소지가 다분하다. 美 해군의 잠수함 전력이 中 해군의 잠수함 전력에 양적으로 부족한 데다 인-태 전략상 중국을 견제하려면, 오커스(AUKUS) 국가들과 협력이 긴요한 현실에 때마침 일본이 오커스 가입에 적극적이다.
오커스는 2021년 9월 15일 美·英·호주 간 맺은 인도-태평양 3자 안보 협의체로서 호주는 美·英의 지원으로 핵 잠함을 보유하기 직전이다.
지난해 4월 7일 英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일본의 오커스 가입을 추진하면서 기존 회원국(美·英·호주)들과 대화할 거로 보도했다.
일본은 오커스 가입을 통해서나, 오커스와 같은 방식으로 미국으로부터 원자로와 핵 물질을 지원받을 가능성이 크다. 오커스의 양대 축인 ‘필러(Pillar) 1·2’ 가운데 ‘필러 2’의 확장 대상국이어서다.
‘필러 1’은 ‘핵 잠함 개발 프로그램’이다. ‘필러 2’는 ‘3개국이 해저, 양자 기술, 인공지능(AI)과 자율무기, 사이버, 극초음속과 대(對) 극초음속, 전자전, 국방 혁신, 정보 공유 등의 8개 핵심 방위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계획’이다. 일본은 ‘필러 2’에 가입한 다음 ‘필러 1’을 추가로 선택할 것이다.
한국은 트럼프의 결정으로 韓·美 원자력협정 개정을 준비하며, 핵 잠함 건조에 긍정적인 분위기다.
문제는 우리의 잠수함 건조 기술과 핵 잠함 원자로에 대한 설계 능력이 있기에 자체 건조할 역량은 충분하지만, 사용할 핵연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핵 잠함 연료로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쓰지만, 우리는 20% 이하의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해야 하기에 여러 번 교체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과의 관계가 조심스럽지만, 우리도 오커스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의 기술과 know-how를 지원받을 경우, 핵 잠함 운용에 간섭받을 여지가 상당하지만, 동북아의 안보정세가 요동치는 이때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마냥 회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트럼프의 美 국가방위전략(이하 NDS)은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을 거로 예상되고, 방어목표에선 ‘美 본토에 서반구’까지 추가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또한, 전(全) 세계 주둔 미군을 재배치하는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lobal Defense Posture Review)’도 동시에 공개할 것이다.
지난 3월 美 폴리티코(Politico)는 트럼프와 폴란드 대통령의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폴란드에서 미군을 철수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에 대해선 철수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특정한 국가 이외의 다른 국가에선 주둔 미군에 변화가 있을 거라고 예고했다.
이러한 현실은 엘브리지 콜비 전쟁부 정책차관(이하 엘브리지 콜비) 등이 외교 안보라인 핵심 인사로 등장할 때부터 예견됐다. 지난 6월 엘브리지 콜비는 대만과 국방 분야 고위급 회담을 취소하고 양자 협의만 조용히 진행했다.
美 안보라인의 고립주의적 정책 성향이 NDS에서 중국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2030년까지 호주에 핵 잠함(5척)을 판매하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통보하면서 ‘America First’의 실체가 드러났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라면서도 미국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위협에 대응하라는 요구의 의미도 명료해졌다.
중·러 패권이 동북아시아를 휘몰아치는 이때 베네수엘라와 연계된 갱단 보트를 직접 폭침시킨 트럼프의 행보는 ‘강약약강(强弱弱强·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가 이번 결정을 또다시 뒤집기 이전에 ‘韓·美 원자력협정 개정’은 ‘핵연료 재처리’를, ‘핵 잠함 건조’는 우선 ‘문서화’를 진행해야 한다.
김성진 국방전문 기자 btnk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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