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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구의 콘크리트 세상] 분리저감 유동화제 개발

기사승인 25-01-0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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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풀리면 뒤집어 보라


연구와 기술 개발의 현장에서는 문제를 정면으로만 해결하려다 오히려 길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한 연구자가 소개한 고사(故事)는 이러한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옛날 한 왕이 외출할 때마다 돌멩이에 발이 다친다며 “내가 다니는 모든 길에 쇠가죽을 깔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현 불가능한 명령에 모두가 난감해하던 가운데, 한 지혜로운 이는 “길에 쇠가죽을 깔 것이 아니라 왕의 발을 쇠가죽으로 감싸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그 결과 구두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문제의 대상이 아니라 문제를 겪는 주체를 바꿔본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건설 현장의 콘크리트 기술 개발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분리저감형 유동화제 개발 과정이다.

콘크리트는 일반적으로 슬럼프치가 작은 ‘된 비빔’ 콘크리트가 슬럼프치가 큰 ‘질은’ 콘크리트보다 건조수축 균열 저감, 탄성계수, 내구성 측면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인다. 하지만 된 비빔 콘크리트는 시공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물을 추가하지 않고 유동성을 높여주는 화학혼화제를 사용하는 ‘유동화 콘크리트 공법’이 개발됐다.
 
 
콘크리트의 유동화
 
 
유동화 콘크리트 공법은 1970년대 독일의 멜라민계, 일본의 나프탈렌계 유동화제 발명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국내에는 1980년대 초 일본을 통해 도입돼 일부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 실무에서는 유동화 콘크리트를 적용할 경우 재료분리 현상이 빈번히 발생해, 혼입량이나 투입 시기를 조정해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아 공법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

문제의 원인은 의외로 단순했다. 유동화 전의 베이스 콘크리트는 기존과 동일한 배합이 아니라, 유동화 후 증가하는 슬럼프에 맞춰 잔골재율을 높여 점성을 확보한 배합으로 출하돼야 했다. 즉, 유동화 콘크리트 공법을 적용하려면 레미콘 공장에서부터 배합 변경이 선행돼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이 사실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고, 레미콘사 역시 배합 변경이 KS 표준관리 문제나 관리상의 번거로움을 이유로 이를 꺼리면서 유동화 공법은 현장에서 정착하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연구자는 앞서 소개한 고사의 ‘발상의 전환’을 떠올렸다고 한다. 레미콘사가 배합 변경을 꺼린다면, 배합이 아니라 유동화제를 바꾸는 방향으로 접근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에 따라 실험실에서는 유동화제를 개선하는 연구가 시작됐다.

유동화제는 유동성을 높이는 대신 점성을 낮춰 재료분리를 유발한다는 점에 착안해, 유동화제에 점성을 보완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끈적한 성질을 부여하는 증점제를 유동화제와 병용하는 실험이 이어졌지만, 일부 증점제는 혼합 시 급격히 굳거나 공기량이 과다하게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해 적합한 재료를 찾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화학 전문가의 조언으로 멜라민계 유동화제와 폴리에탄올옥사이트(PEO) 계열 증점제를 조합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이후 반복 실험을 통해 유동화제와 증점제의 최적 혼합비율, 공기량 조절을 위한 AE제 첨가율까지 조합해 ‘분리저감형 유동화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과 공법은 국토교통부 신기술 제264호로 등록돼 한동안 다수의 건설 현장에서 활용됐다. 다만 이후 고성능 화학혼화제가 보급되면서 유동화 콘크리트 공법 자체는 점차 사용 빈도가 줄어들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 사례가 기술 발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존 틀 안에서만 해법을 찾기보다, 접근 방향 자체를 바꿔보는 유연성이 연구와 실무 모두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면 돌파가 항상 정답은 아니며, 때로는 ‘길을 바꾸는 대신 신발을 신는’ 발상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사례로 남고 있다.

한천구 청주대 건축공학과 석좌교수

<저작권자 경제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콘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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