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군 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안보교수(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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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중동 정세와 러-북 간 군사적 밀착을 심화하며,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와중에 대한민국(이하 한국)이 엄혹한 카오스에 빠졌다. 한국은 산업·정보·세계·민주화를 통해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 평가받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가 정치·경제·사회적 위기 국면과 맞물려 불안한 정국(政局)이 더욱 혼탁해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비상계엄이 발생하자 모든 위협 책동을 즉각 중단했다. 국회와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정상화하는 과정이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아울러 ‘적대적 2 국가론’에 따라 의도적인 거리 두기, 선대(先代) 노선에서 벗어나 한류(韓流) 유입을 차단하고, 주민들을 옥죄기 위한 포석으로도 읽힌다. 비상계엄이 해제된 다음 7일이 지나자 ‘~파쇼독재의 총칼, 아비규환’이라는 비판을 재개했다. 이들은 지하공작·온라인망을 동원한 인지전(認知戰-Cognitive Warfare)을 통해 혼란을 부추기고,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정치권의 극단적인 진영 투쟁과 정치 격변기마다 나타나는 고위급장교 일부의 좌고우면 행태가 묵묵히 헌신하는 대다수 장병에 자괴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 軍은 전문직업 집단으로서 국가·국민, 법을 대표하는 통수권자(상관)의 명령에 신뢰와 법·양심에 따라 따르고 있다. 그러나 부여받은 ‘국가 보위(국가 안보·국민 안위) 책무’에 소홀한 순간 안보의 최후 보루이자 전문직업 집단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역할마저 의심받게 된다.
독일 연방군은 50여 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내적 지휘(Innere Fuhrung)’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비민주·비합법적인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유로운 인격체로서 책임지는 시민이자 전투 준비태세가 완비된 군인 즉, 제복 입은 시민’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관의 명령이라고 하여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다. 우리 軍도 소명의식(Calling)에 기반한 전문직업 집단으로서 ‘좌고우면과 사욕(私慾)’을 떨쳐버려야 한다. 이번의 사태는 가담자의 처벌로 끝낼 단순 사안이 아니며, 두 가지 측면에서 후유증이 우려스럽다.
첫째, 끊이지 않는 정치권의 대군(對軍) 포퓰리즘이 내부 결속(단결)을 저해하고, 이들이 軍 인사권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직업군인 일부는 ‘눈치 보기와 줄 서기 유혹’에 빠진다. 이로 인해 중요한 전투력 발전 및 유지를 비롯해 초급간부의 처우를 개선하는 노력에도 소홀하게 된 측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2025년도 예산에 반영했던 처우 개선 예산은 삭감됐고, 중급간부들의 ‘엑소더스(exodus)’는 진행형이다. 최근 국방의 근간이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음에도 정치권은 권력 투쟁(政爭)에 여념이 없다. 부모·청년들이 앞다퉈 입대 시기를 미루는 작금의 현실은 누구의 책임인지 의문이다.
둘째, 軍의 전투력 약화가 현실이 되었다. 정예요원들이 비상계엄 사태에 지혜롭게 대처하고도 ‘계엄군’으로 비판받으며, 軍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이 늘어났고, 정신적 스트레스와 사기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한국형 3축 체계’ 중 대량응징보복(KMPR) 핵심 요원들의 지휘관(軍)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국가가 투자한 그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전투력 운용에도 심대한 손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연말 계획했던 각급 제대의 군사 훈련은 전면 중단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안보 최후 보루의 기본 책무인 대북(對北) 군사대비태세를 흔들리게 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그러나 어려움에 직면한 가운데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지휘 통제체계 확립을 위한 절실함, ‘국민에 신뢰받는 軍’이어야 한다는 국방부 장관 권한 대행의 의지, 곧바로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하는 등 침체된 내부 분위기를 해소하려는 노력 등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정치·외교·사회적 혼란이 진행되고 있기에 극복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느껴진다. 다만 대비태세라는 기본 책무에 소홀해선 안 된다. 러-우 전쟁에서 북한군의 목숨을 담보로 실전을 경험하게 한 김정은이 다양한 형태의 회색지대(Gray Zone) 도발 및 군사적 도발을 자행할 경우,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세 가지 측면의 대남(對南) 책동은 과감하게 시도할 것이다.
첫째, 우리 사회의 혼란과 불안감을 이용한 자중지란(自中之亂)과 러시아 파병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한류 차단 및 주민 결속을 강제할 것이다.
둘째, 러시아의 핵·미사일 첨단 군사 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셋째, 美 트럼프 당선인과 직접 담판을 통해 핵무기 수준을 동결하고,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되, 군비통제 협상에선 한국을 배제(passing)할 것이다.
분노와 원망이 앞서더라도 軍 전체를 비하(매도)하는 분위기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대다수 장병이 우리의 자식이자 형제(후배), 친구들이다. 이들을 추스르고, 보호하며, 힘든 마음을 보듬어 주기 위해서라도 軍 지휘부의 공백 상태는 조기에 해결돼야 한다. 이를 통해 엄정한 軍 기강을 재확립하고, 전투 대비태세는 강화해야 한다.
김성진 국방전문 기자 btnk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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